(인+지)2002.2007년 후보단일화 무엇이 다른가
정동영-문국현 후보간 향후 ‘단일화 로드맵’ 협상이 지난 2002년 16대 대선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단일화협상 과정과 무엇이 다른지가 관심사이다.
■시기·방식·구도의 ‘차이점’
우선 추진시기가 다르다.
16대 때는 선거일(12월19일) 40일전인 11월 초 노-정간 후보단일화 원칙에 합의, 단일화 방식에 대한 양당 협상단의 조정을 통해 한 차례 TV토론을 거쳐 후보등록일(27일) 이틀 전 일반여론조사를 실시해 노무현 단일후보를 탄생시켰다. 단일화 합의에서 단일후보 선출에 이르기까지 15일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현재는 후보등록후 선거일을 불과 15일 앞두고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다. 정동영 후보가 ‘시간이 없다’며 12월8일까지 매듭지을 것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
대선구도의 차이도 있다.
16대에는 ‘1강(한나라당 이회창 후보)-2중(노무현-정몽준)’ 구도에서 출발, 자연스럽게 범 여권 성향의 2중 후보간 단일화 필요성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현재는 ‘1강-2중(이회창-정동영)-다약’구도이다. 이회창-정동영간은 단일화 대상이 되지 못한다. 잠재적인 단일화 대상인 범 여권 주자들이 ‘다자군’을 형성한 점도 특징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단일화 방식에도 ‘온도차’가 감지된다.
노-정 단일화는 ‘TV토론 후 여론조사’에서 결정됐다. 당시 노 후보는 단일화를 전격 제안하면서 정 후보에게 ‘국민경선’을 내세웠다가 추후 여론조사로 변경했다.
현재 문 후보는 TV토론과 패널·시민판정단을 통한 단일화를, 정 후보측은 TV토론과 일반 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시너지효과 기대-2007년 ‘승자독식’ 대결구도 진행
단일화 제안의 ‘옵션’도 차이점이 발견된다. 16대에는 TV토론과 여론조사가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정·문 후보와 시민·사회세력까지 가세한 ‘3자간 협상’ 진행속에 단일화 방식과 시기 등이 논의되고 있다.
또 2002년 대선이 ‘1+1=1’형식의 시너지 효과 창출이였다면 현재는 ‘1-1=1’방식의 일대일 대결방식을 통한 ‘양자택일’이다.
전자가 부드러운 방식의 단일화로 결과에 승복한 양 진영 지지자들의 결집까지 담보로 내세운 반면 후자는 마치 ‘미국 서부시대 총잡이 쟝고식 대결’이나 이종격투기식 ‘승자독식’구도를 앞세우고 있어 자칫 단일화가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당내부의 사정도 다르다.
16대 때는 노 후보에게 후보단일화를 압박하며 집단 탈당 배수진을 친 ‘후단협’ 파문에다 실제 일부 의원들의 탈당선언후 한나라당 입당으로 ‘당적변경’사태가 있었지만 현재는 내부발 갈등요인이 탈당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또한 16대 때는 대선(2002년)과 총선(2004년)의 간극이 16개월 차이가 났지만 17대는 대선과 총선 일정이 불과 4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대선과 총선의 시기적 중첩성에 따라 선거결과의 ‘연동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각 정파세력들의 이합집산이 전혀 예측불가능한 구도로 전개될 수 있음을 선반영한 것이다.
이날 안동선·이윤수 의원 등 옛 민주당 출신인사들이 이명박 후보가 아닌 16대 당시 ‘적군후보’였던 이회창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아이러니한’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면 조순형 의원 역시 창캠프 합류가 점쳐지는 등 지지군 경계가 불분명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4개월 후 총선을 염두에 둔 세력통합을 ‘우선시’하고 있음이 원인으로 분석된다./[email protected]정인홍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