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큰 일 났다. 어머니가 아끼시던 꽃병을 또 깼다. 한바탕 꾸중을 들을 게다. 좁은 집을 휘저으며 춤을 추다보니 세간살이 부수는 건 다반사다. 춤추기 좋아했던 어린 소년은 겁이 덜컥 났다.
그런 소년에게 아버지는 ‘군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소년은 얌전한 척 하기로 했다. 단정하게 깎은 머리에 깔끔한 교복, 본래 모습은 잠시 숨기는 거다.
소년의 이름은 에녹(28), 본명은 정용훈이다. 사람들은 에녹이란 이름이 멋있게 보이려고 만든 예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꽤 거창하다.
“에녹은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다 승천한 인물이에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믿음, 겸손함을 갖기 위해 지은 이름이죠.”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는 ‘너무 종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진 말라’며 머뭇거렸다. 한국 교회 문화에 비판적인 세간의 분위기를 의식한 탓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자연스럽게 CCM 가수로 활동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방학을 맞는 여름과 겨울, 수련회나 지방 교회를 다니며 공연을 하는게 그의 일이다. 독특한 건 그만의 표현법이다.
“보통 CCM 노래라고 하면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려요. 저는 그걸 힙합과 랩, 춤으로 표현했으면 합니다.”
무대에 설 때마다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시선이 온몸에 꽂혔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CCM 음악이 너무 경박하다’고 혀를 찬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나이에 맞는 표현법이란 게 있쟎아요. 틀에 갇히긴 싫었어요. 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건 춤이니까요.”
이렇게 교회에서 춤추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교회밖으로 나오게 됐다. 평소 그를 눈여겨 봐둔 선배가 뮤지컬 ‘알타보이즈’란 작품이 있다며 오디션을 권유한 것. 그 선배는 ‘너에게 딱 맞는 작품’이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제작사 뮤지컬 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그를 보자마자 ‘스타성이 있다’며 O.K사인을 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하얀 피부, 훤칠한 키가 소녀팬들 사로잡기에 딱이다. 언뜻 보면 댄스가수의 원조 박남정을 닮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학창 시절의 우상이 박남정이었단다.
CCM가수로 꾸준히 활동해온 만큼 무대가 낯설진 않지만 정식 뮤지컬은 ‘알타보이즈’가 처음이다. 그는 여기서 악동 루크역을 맡는다. 약물중독자였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용서를 구하고 다시 태어나는 캐릭터다. 루크를 연기할 때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엄하셔서 모범생인 척 했지만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무대는 제 차지였어요. 얌전해보인다구요? 직접 공연 한 번 보신다면 그런 얘기 못하실 걸요?”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알타보이즈는…
‘알타보이즈’는 다섯명의 남자배우가 신나는 노래와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콘서트형 뮤지컬로 지난해 초연 이후 세번째 공연이다. 뮤지컬 ‘스위니토드’에서 토비아스 역으로 주목받은 한지상과 뮤지컬 ‘오디션’의 초연 멤버로 활약한 윤석원, ‘젊음의 행진’의 정동현, ‘맘마미아’의 김남호 등이 출연한다. 이 작품은 다음달 15일부터 내년 3월2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에서 만날 수 있다. 전석 4만5000원.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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