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fn기고] 차기정부에 바란다/윤우진 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24 09:41

수정 2014.11.04 14:5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선이 마침내 끝났다. 이명박 후보의 대승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예견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차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투표자의 과반수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만큼 국민들의 여망과 기대에 대한 부담도 작지 않을 것이다. 당선자의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겸손과 각오는 이를 반영하고 있는 듯 싶다.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과 야당 후보의 압승이라는 대선 결과에는 유권자들의 이성에 의한 판단보다는 감성에 의한 판단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현실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과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절박감이 투표 참여 여부와 지지후보의 선택에 함께 투영되었다는 얘기다.
경제문제가 화두가 된 이번 대선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경제를 짓눌러 온 ‘성장 갈증’이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경제 활성화와 서민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차기정부의 앞날에는 많은 경제적 난제가 놓여 있다. 성장동력 재점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업투자 활성화, 양극화 해소, 연금개혁, 사회복지 확충 등에서 중요한 과제들이 미래의 실천계획을 기다리고 있다.

차기정부가 경제문제 해결에서 유념해야 할 사실은 대중적 인기와 전시성 효과를 염두에 둔 충동적 발상은 경제의 개선보다는 개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경제문제의 해결은 복잡한 선택의 연속이므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차가운 머리’에 바탕을 둔 과학적 실용주의에 의해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경제적 분석을 무시하고 결과를 예단한 정책이나 경제주체를 혼란시키는 정책은 실패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치렀다. 차기정부에서는 정책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경제적 논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을 이끌어 내어 정책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차기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경제주체가 쏟아내는 요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과제다. 국가경제는 한정된 자원으로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므로 경제원칙과 사회정의가 결합된 통치철학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분배문제가 수반되어 기득권의 희생이 수반되는 경제정책의 추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뜨거운 가슴’에 호소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일례로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의 경제적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은 양극화 해소는 사회적 타협을 통해 차선의 대안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차기정부가 추구할 경제정책은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다만, 정부를 시장(또는 기업)의 경쟁자로 보고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시장만능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영미형 시장주의에 입각한 워싱턴합의(Washington Consensus)를 채택한 개도국의 경우 상당수가 경제발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경험적 사실은 자국에 적합한 시장기구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시장에서 조정의 실패(coordination failure)가 일어날 경우, 정부에게는 시장기능의 보완자나 촉매자로서의 역할 수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산업발전 경험을 보더라도 새로운 산업의 태동과 성장에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밑바탕이 되었다.


동서고금의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실용성에 바탕을 둔 경제적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는 언제나 경제적인 풍요를 누렸다. 중국의 흑묘백묘(黑描白描) 정책, 베트남의 도이모이(Doi Moi) 정책에서 보듯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왕성한 기업가정신과 성실한 관료집단으로 무장한 한국형 실용주의의 부활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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