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반칙·편법 이제 그만] (1)매 맞는 공권력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1.02 16:01

수정 2014.11.07 16:27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 3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1인당 국민총생산(GDP)도 2만 달러를 넘보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역시 2012년까지 5대 강국에 진입한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고 정부 기초연구비 등을 대폭 늘이고 있다.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본격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맞춰가고 있는 나라 경쟁력에 비해 국민의 의식수준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제와 기술이 발달한 만큼 개인주의 성향도 짙어지면서 더불어 사는 삶 보다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같은 생각은 개인주의를 넘어 온갖 ‘떼쓰기’와 반칙, 불법 등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이기주의로 확대되고 있다.


음주소란, 오물투기, 불안감 조성, 새치기, 경찰서 난동, 자연훼손 등 우리 사회 기초질서 위반 사례는 매년 100만건 이상 접수되는 등 질서가 허물어 진지 오래며 일부 시민단체나 노동계는 시위 과정에서 이미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법질서 확립에 앞장서야할 공무원들이 불법을 저지르다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변호사와 같은 사회 지도층의 불법 행위는 더 교묘하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법과 원칙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룰이지만 오히려 ‘지키면 손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엄청난 사회적 낭비는 물론 국가 브랜드 이미지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지만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기초질서와 법질서 바로 세우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반칙·편법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취임 후 이를 잡아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파이낸셜 뉴스는 이에 따라 국가공권력에 대한 도전 또는 무시하는 분위기, 도덕 불감증의 현 실태와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기 위한 캠페인성 시리즈를 게재한다.

■ 도전받는 공권력, 경찰은 ‘동네 북’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면서 고초도 가장 큰 곳은 단연 일선 지구대다. 언제 어느 때라도 동네 지구대를 찾아가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경찰에게 폭언, 폭행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를 넘어서 지구대 기물을 파손하거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걷어차며 순찰차에게 둔기를 집어던지는 사건도 이제는 화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에는 딱히 이렇다할 이유가 없다. 그냥 기분이 나빠서, 술에 취해서, 혹은 애인이랑 헤어져서 욕설을 하고 난동을 부렸다는 게 경찰 조사결과 이들의 진술 내용이다.

지난달 전남 해남경찰서에 붙잡힌 안모씨는 ‘예전에 경찰서 앞에서 손가락을 다쳤다’는 게 행패를 부린 동기가 됐다.

같은 달 목포에서는 아파트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은 뒤 다리를 걷어찬 30대 박모씨가, 앞서 8월 전남 구례에서는 애인과 다툰 뒤 파출소를 찾아가 술병을 던지며 화풀이를 한 이모씨(40)가 쇠고랑을 찼다.

순찰 도중에 괴한에게 피습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경찰청이 집계한 최근 3년간 공상(公傷)발생 원인별 현황(2006년 12월31일 기준)에 따르면 공무 중 부상을 입은 경찰은 2004년 1088명에서 2005년 1187명, 2006년 1399명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가운데 범인으로부터 습격당한 경우도 231건, 266건, 354건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범인피격으로 3명이 순직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머리가 길다고, 인상이 험하다고 삼청교육대로 끌고 가 폭압적 공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던 경찰이 이제는 밤길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새벽 4시40분께 부산 거제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은 연제구 거제동을 순찰하는 도중 찜질방 지하 주차장에서 검정봉투에 얼굴을 들이댄 채 본드를 흡입하고 있는 전모씨(38)를 발견하고 검거를 시도했다.

그러나 환각상태였던 전씨는 순순히 수갑을 찰 듯하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 휘둘러 경찰에서 상처를 입히고 달아났다. 그나마 다행히 전씨는 수갑을 찬 것을 수상해 여긴 시민의 신고로 2시간여 후 붙잡히기는 했다.

연말 연시였던 지난달 3일 야간순찰을 돌던 모 지구도 소속 한 경찰관은 술 취한 사람이 도로를 막고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에 출동했다가 입이 찢어지는 봉변을 당했다.

간신히 제압해 순찰차 뒷좌석에 태웠으나 취객이 갑자기 운전석에 앉아있던 경찰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또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과 소속 박모(38) 경사가 노래방에서 난동을 부리던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병원 치료 도중 끝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 팔, 다리를 물어뜯고 얼굴에 침을 뱉고 지구대 사무실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일은 속칭 ‘기사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지구대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십중팔구는 경찰에 대해 적개심을 보이거나 욕설도 대화를 시작한다”며 “경찰이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것이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동네북은 아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물론 시민 의식만 탓할 수는 없다. 각종 비리와 강력 사건이 끊이지 않아 국민 신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점을 경찰은 자각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공집방해 발생 최근 3년간 3만여건, 기타 형법범죄 중 최고 30배

대검찰청이 발간한 ‘범죄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공무집행방해 범죄는 2004년 1만502건, 2005년 1만411건, 2006년 1만1082건 등 모두 3만1995건이 발생했다.

같이 기타 형법 범죄로 분류되는 명예훼손(3만1003건), 무고 (1만8228건)와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난다. 주거침입(6802건)과 교통방해(3332건), 공안을 해하는 죄(116건) 등과는 작게는 4배에서 크게는 30배까지 높은 수치다.

공집방해 성별 범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10배가량 높았고 1년 중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는 6∼7월 발생빈도가 많았다.

검거율은 3년 동안 96.3%에서 98.1% 수준을 보였다. 모두 3만1146건이 검거돼 공무집행을 방해하고도 공권력의 집행을 피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2004∼2006년간 공집방해 범죄자 전회처분 상황을 살펴보면 재범인데도 기소유예나 선고유예,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두 2만7686명(총3만6263명 중 초범 8577명 제외) 가운데 1만2562명이 형 집행이 종료됐다. 하지만 1572명이 기소유예를 선고 받았으며 19명은 선고유예, 332명은 집행 유예 중이었다.

나머지는 즉결심판(2명), 선도유예(28), 수배(63), 보호처분(107), 보석형집행정지(21), 가석방(6), 감호소출소(35) 등이었다. 1699명은 처분 상황을 밝혀지지 않았고 3530명은 기타로 분류됐다.

다만 형 집행 종료에 재산형과 집행유예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공집방해 죄를 범해 실제 교정기관 등에서 수형생활을 한 경우는 훨씬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이 펴낸 ‘사법연감’에 따르면 같은 기간 공집방해 혐의로 기소된 7511명 가운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900명, 11.9%에 그쳤다.

3분의 1이 넘는 2759명(36.7%)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124명(1.6%)은 선고유예를, 32명(0.4%)은 무죄가 선고됐고 8명(0.1%)은 공소가 기각됐다.

피고인의 재산 일부를 박탈하는 재산형은 가장 많은 3111명(41.4%)이 선고받았다. 이외에 소년부 송치 11명(0.1%), 기타 566명(7.5) 등이었다.

항소심에서는 362명 중 43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고 81명이 집행유예, 14명이 재산형을 선고받았다. 대부분의 항소는 기각됐다.

■공권력 추락, 경찰·정부의 ‘자승자박’ - 시민은 ‘나’가 아닌 ‘우리’ 의식전환

공권력 추락은 경찰을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에서 자초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경찰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며 공권력을 휘두르던 시절 이미지가 아직 국민들 뇌리에 굳게 박혀 있으며 공무원 범죄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사법기관의 정당한 수사나 공권력 집행을 자신들의 이익 여하에 따라 무시, 폄하, 매도하기 다반사이며 나라의 큰 어른도 법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으로 국민들의 준법의식 훼손에 한몫했다고 일부는 제기한다.

경찰은 과거 독재정권 당시 폭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위해 엄격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더 이상은 비리에 연루되지 않아야 하고 정부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사회적 지지를 얻는 것이 공권력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시민들도 공권력이 흔들리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 아닌 ‘우리’라는 생각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jw@fnnews.com 정지우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