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착한 세상을 꿈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1.24 16:58

수정 2014.11.07 14:21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착한’ 영화다. 영화 속 슈퍼맨(황정민)은 자신을 ‘크립톤성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인간들의 영원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그는 또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하고 “문을 열 수 있는 건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라고도 말한다. 그런 그는 행인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소매치기를 끝까지 쫓아가 잡아낼 뿐 아니라 여학교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바바리맨’을 일망타진하기도 한다.

‘문을 열 수 있는 건 작은 열쇠’라며 작지만 아름다운 선행에 나서던 그는 좀 더 큰 문제를 걱정하기도 한다.

슈퍼맨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지구 온난화다. 하루하루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물구나무(지구를 태양으로부터 멀리 밀어내기 위한 동작이다)를 서곤 하던 그는 지구의 날 같은 행사에 참여해 ‘세이브 더 퓨쳐(Save the Feature)’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이럴 때 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저 미친 사람 쯤으로 치부한다.

휴먼 다큐멘터리 PD인 송수정(전지현)이 처음 슈퍼맨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진심을 알아차렸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소개하는 이 엉뚱한 사나이는 시청률 대박을 꿈꾸는 방송사 PD에게는 재미있는 A급 방송 소재일 뿐이다. 악당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크립토라이트를 집어넣어 지금은 날 수 없지만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겠다거나 온몸의 구멍을 막은 채 100까지 세면 슈퍼맨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그는 그래서 눈물 콧물 쏙 빼놓는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의 전반부가 슈퍼맨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면 후반부는 그가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밝히는 데 집중된다. 그 출발점은 슈퍼맨의 초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악당들이 머릿속에 박아놓았다는 이물질 크립토라이트다. 총알처럼 생긴 크립토라이트가 ‘80년 광주’에서 얻은 상처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시작으로 이 엉뚱한 사나이의 전사(前史)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깍쟁이 같기만 했던 다큐멘터리 PD의 마음도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데뷔작 ‘말아톤’으로 500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정윤철 감독은 “슈퍼맨처럼 영화가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작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면서 “영화 속 슈퍼맨은 매우 낯설고 이상한 존재지만 그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망각했던 진짜 자신의 본 모습을 차츰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명하게 미친’ 한 인간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갈망했던 감독의 꿈이 관철됐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적 재미까지 성취하지는 못한 듯하다. 모든 ‘착한’ 영화가 ‘좋은’ 영화일 수 없고 좋은 영화가 또 ‘재미있는’ 영화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을 열 수 있는 건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라고 되뇌던 슈퍼맨의 과거 직업이 열쇠수리공이었다는 설정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슈퍼맨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의 끝에 ‘80년 광주’를 배치한 것은 감독의 부채의식 과잉으로 읽혔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밑줄 쫙 쳐가면서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체관람가. 31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연기파 배우 황정민(오른쪽)과 톱스타 전지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작은 선행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착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