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수레를 온몸으로 막아서는 사마귀의 무모함을 뜻한다. 인류 역사상 작은 변화의 요구를 외면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극단적인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세계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변혁 중 하나는 프랑스혁명이고 그 발단은 지극히 단순했다. 밑으로부터 아주 작은 요구에 대한 기득 계층의 자기 방어가 혁명을 만든 것이다.
귀족 성직자 계급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였지만 프랑스 전국토의 40%를 차지하는 부(富)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 재정 위기에도 자신의 면세 특권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특권 계층 자체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단초를 스스로 만들고 만 것이다. 이는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과거 역사 속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변화’라는 흐름을 받아들이는 게 녹록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최근 발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수요자 입장에서 기능을 정비하는 한편, 각 부처로 흩어진 연관된 기능을 광역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국가경쟁력 제고의 최일선에서 우리 기업들의 목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던 필자로서는 정부 연구개발과 관련해 금번 정부조직 개편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작은 나라일수록 한정된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집행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특히 효율성 저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 사업은 일부 관련부처간 영역 다툼에 기인한 분산적 투자가 그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기술’이 ‘산업’과 결합해야 할 필요성은 어제 오늘의 주장이 아니다. 산업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자금과 연구소는 산업부처가 담당해 산업과 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산업기술 개발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나뉘어 추진돼 왔다. 그 결과 정책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효율과 중복 투자로 인한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실제로 매년 기술개발에 투여되는 예산은 갈수록 증가해 10조원을 넘기고 있지만 대학과 연구소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경험이 있는 기업은 7%에 불과하다. 2006년 정부 연구개발 사업의 특허 이전율은 3.6%에 그쳤다.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매년 늘어만 가고 있어 기업들이 애써 수출로 벌어들인 피 같은 돈은 외국의 원천기술과 특허를 사들이는 데 소진되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추진하기 위한 관련 부처간 역할 조정에만 8개월이란 긴 시간이 낭비되곤 했다. 이 모두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해가는 ‘기술 춘추전국’시대에 그간의 정부 연구개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부정적인 모습들이다.
이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부처간 고질적인 영역 다툼과 정부 연구개발 중복 지원을 해소하고 다양한 정책수단을 묶어 통합 지원할 경로를 마련한다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해 산업과 기술개발을 한 부처에서 일괄 담당하게 하고 초기 단계부터 ‘시장’을 염두에 둔 기술개발을 추진한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되새겨 볼 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 며칠 사이 금번 조직 개편 방향에 대해 과거의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또는 바라보고 싶어하는 구태의연한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일부 정부부처가 새로운 변화 요구를 애써 외면한다면 국민들의 눈에는 조직 생존을 이유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부처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쫓는 모습을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는다.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크게 읽는 혜안을 갖고 국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 모두는 ‘당랑거철’의 교훈이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도 적용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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