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만해도 기분이 상큼해지는 동구리 캐릭터를 이용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권기수(36)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12일∼29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작품은 눈을 편안하면서도 즐겁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재료나 화법은 서양적이지만 화면에 구현해낸 장면들은 세련된 동양미가 일품이어서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 역시 전통 문인화의 사군자들이다. 곧게 수직으로 쭉쭉 뻗은 컬러 막대는 대나무이며 점점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송이들은 다름 아닌 매화이다. 가는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소형 분수는 여린 청초미를 자랑하는 난초다.
작품에서 주인공 ‘동구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동구리는 곧 소통이다. 아무리 작가의 강한 의지가 배인 작품일지라도 보는 이마다 전혀 다른 느낌과 다양한 해석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작품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느낌을 잔잔히 전한다. 심란하고 우울함을 덮고 항상 유쾌 상쾌 통쾌하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의 욕망 그대로를 보여준다. 때문에 동구리는 그만큼 불특정 다수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캐릭터이며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동구리 탄생의 비밀은 의외로 쉽다. 동구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키포인트는 웃고 있는 미소이다.
한국 특유의 고졸하고 온화한 표정을 미소로 잡아냈다. 이는 한없이 포용적이고 자비로운 한국 전통불상의 미소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심플하면서도 재미가 넘치는 매력으로 사랑을 듬뿍 받는 대중적인 캐릭터에 지나지 않지만 결국 그 내면엔 누구난 공감할 수 있는 명상적이고 철학적인 배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선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 비견할 만하다.
어떤 면에선 작가의 작품을 한국적 팝아트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한국 고유의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조형성을 아주 적절하게 가미한 작품이란 게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감의 조화나 간혹 검은 바탕에 오방색 색동 띠가 어우러진 동양적인 색채의 향연은 누구나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동구리라는 상징적인 캐릭터와 정돈되고 문양화된 이미지 처리는 팝아트로써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권기수의 작품을 여느 팝아트와 차별시키는 점은 바로 동양과 서양의 감성을 절묘하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동구리는 수많은 군상 속에서 고독의 무게로 지치지 않고 밝게 일어서려는 현대인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4 seasons’이라는 주제로 캔버스의 아크릴 평면작품부터 수공예 신작, 조각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작품가격은 지난해 홍콩의 대만경매회사에서 100호 크기가 약 63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선 100호크기가 1300만∼1500만원에 판매한다.(02)02-549-7574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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