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은 12일 남대문경찰서 대강당에서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채모씨(70)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긴급체포,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발표했다.
■범행동기=채씨는 97∼98년 경기 고양시 자신 소유의 주거지(300여㎡)가 재건축되는 과정에서 시공회사측으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 관계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채씨는 같은 이유로 저지른 2006년 4월 창경궁 방화사건으로 법원에 500만원의 공탁금을 납부했으나 문화재 소실 추징금으로 1300만원을 선고받자 억울한 처분을 받았다며 불만을 품고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것을 계획했다.
특히 채씨는 열차 등 대중교통수단을 대상으로 한 테러도 고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동수사본부는 “피의자가 열차 전복 등 대중교통수단을 대상으로 한 테러도 고려했으나 인명피해를 우려해 포기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채씨가 숭례문을 방화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불을 질러도 인명 피해 우려가 적고 접근이 쉬웠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경찰은 지난 11일 오후 채씨의 안방을 압수수색해 채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편지지 4장 분량 자필서를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자필서에는 토지보상문제, 자신에 대한 사회적 냉대, 재건축 과정에서의 민원제기 등 사회에 대한 불만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나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범행계획 및 실행=채씨는 경찰조사에서 지난해 7월과 12월 중순께 2차례에 걸쳐 숭례문을 사전답사 한 뒤 범행에 착수했다고 진술했다.
채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 10일 전처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출발, 고양 및 서울시청을 거쳐 숭례문 인근에 도착한 뒤 오후 8시45분께 숭례문 좌측(서쪽)으로 올라가서는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 숭례문 내부로 침입했다.
채씨는 이어 숭례문 2층 누각으로 올라가 1.5리터 페트병에 담긴 시너 3통 중 1통을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질렀으며 범행 후 접이식 사다리와 라이터, 배낭을 현장에 두고 빠져 나왔다.
채씨는 경찰이 현장조사에서 수거한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 중 1개가 “본인이 사용한 것이 맞다”고 진술했다.
■검거 경위=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자 현장에서 목격된 라이터와 제보 등을 통해 방화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으며 방화전력자의 범행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동일수법 전과자 들을 중심으로 화재당일 행적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경찰은 2006년 창경궁 문정전 방화범인 채씨를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주변 관계자 및 행적에 대한 탐문수사에 들어갔으며 전처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너통과 시너냄새가 나는 가죽장갑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오후 7시 40분께 강화도 모 마을회관 앞에서 채씨를 발견, 화재 당일 행적에 대해 추궁한 결과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같은날 오후 8시 15분께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전날 강화도 하점면 장정2리에서 긴급체포한 용의자 채모(70)씨를 상대로 밤샘조사를 벌여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채씨는 누구인가
고양시 일산의 한적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채씨는 자신의 토지가 신축 아파트 건축 부지로 수용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이어왔다.
채씨가 숭례문 방화와 같은 끔찍한 범죄를 결심한 것은 1997-1998년 자신의 토지가 신축 아파트 건설 부지에 포함되면서부터. 당시 모 건축회사가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채씨 토지를 아파트 출입을 위한 도시계획도로로 수용하려 했다.
회사는 토지매입금으로 공시지가인 9600만원을 책정했지만 채씨는 4억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건축회사가 토지 매입을 거부하자 결국 채씨의 토지는 아파트 숲 사이에 갇힌 불모지가 되고 말았다.
분노한 채씨는 건설사를 상대로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소송을 비롯해 고양시청, 대통령비서실 등을 상대로 수차례 진정과 이의를 제기했지만 모두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채씨가 사회에 극단적 불만을 품게 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유력용의자 공조 혼선=강화도 총기류 피탈사건 이후 경찰의 공조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숭례문 화재사건 용의자 검거에서도 서울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의 공조수사가 혼선을 빚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11일 오후 8시 15분께 채씨를 긴급체포해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 중이었으나 남대문경찰서는 다수의 용의자 중 한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경찰청은 긴급체포한 채씨를 조사한 뒤 12일 새벽 브리핑자료를 통해 "방화 용의자로 채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다. 수사완료 후 별도 브리핑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대문경찰서측은 서울경찰청의 브리핑자료 배포 1∼2시간 전에 "수십명의 용의자 중 한명이다"고 언급해 유력 용의자에 대한 공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공조수사에 혼선을 빚은 것은 아니다"며 "여러 팀이 용의자 검거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시간차가 있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채씨의 주거지 등에서 압수한 잠바, 바지, 운동화, 가죽장갑, 모자, 범행후 남은 시너 6리터 등을 증거물로 압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며 추가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다.
/pio@fnnews.com 박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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