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검은 케네디’ 변화와 희망 유권자 사로잡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3.02 18:04

수정 2014.11.07 11:57



미국인들은 왜 오바마에 열광하는가.

미국의 대통령선거 ‘1라운드’인 민주, 공화당의 후보경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공화당은 존 매케인이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오바마의 승리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4일(현지시간) 텍사스·오하이오 등의 경선이 치러지는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 오바마가 승리할 경우 그는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셈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오바마쪽으로 이미 기울었다. 오바마는 최근 경선에서 11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다 전국 지지도가 과반수를 넘었다는 소식을 보너스로 받았다. ‘오바마 대세론’과 함께 힐러리의 경선 포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의 변화를 이야기하다

‘검은 케네디(Black JFK)’로 불리는 오바마 철학의 핵심은 변화와 통합 그리고 감성으로 요약된다.


“진보의 미국도, 보수의 미국도 없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의 미국도,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다. 오직 미국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그의 연설문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오바마는 아울러 케네디처럼 어렵고 딱딱한 정책이라는 ‘코트’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변화와 희망을 역설하며 젊은 층의 감성에 호소했다.

미국인들은 10년 이상 계속돼 온 클린턴과 부시의 경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믿을 수 있는 변화(Change we can believe in)’라는 오바마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유권자들의 입맛을 끌어당기는 확실한 ‘재료’였다.

사실 오바마가 내세운 구호는 ‘변화’라는 한 마디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오바마에게서 구겨진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와 변화를 발견하고 있다. 더구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그의 인종적 색채는 ‘통합’의 상징으로 부상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현지 정치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검은 JFK’ 신드롬에는 인종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 변화도 한몫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질서와 세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게리 램 전 아이오와주 농민연맹 회장은 “대공황 당시의 루스벨트, 냉전시대의 케네디가 그랬듯이 미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해결해 주는 능력 있는 지도자가 등장했었다”면서 “지금 미국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를 만들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 ‘진짜 지도자’가 바로 오바마 후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오바마의 연설장에는 항상 지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인종이나 연령·지역에 상관 없이 골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그의 능력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증거다.

공화당원들조차도 오바마의 유세장에 가면 그의 연설에 빠져들 정도다. 오죽하면 ‘오바마칸’(공화당원 가운데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까. 특히 10대와 20대 젊은 층에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아이오와에서는 2만석 가까운 강당이 꽉 들어찼고 뉴햄프셔에서는 넘쳐나는 지지자들로 인해 연설 장소를 더 넓은 곳으로 바꿔야만 했다. 또 워싱턴 아메리칸대학에서 열린 유세에는 날이 밝기도 전에 6000여명의 지지자가 몰려 캠퍼스 밖까지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오바마에 대한 지지연설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이 있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오바마를 통해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흑인 최초로 주지사(버지니아)를 지낸 더글러스 와일더 리치먼드 시장은 “미국 역사상 오바마만큼 침착함과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은 없었다”면서 “미국 국민은 변화를 원하고 있으며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로운 역사와 국가를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힘이 쇠락했다고 보는 것은 미국의 위대한 미래와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미래와 의지를 새로 바꿔 놓겠다”고 약속했다.

■ 다음 세대를 대표하다

‘때가 덜 묻은’ 참신함도 오바마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변화의 종착역인 새로운 시대 가치에 가장 부합한다는 것이다. 힐러리가 아무리 변화를 노래해도 ‘부부(夫婦)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는 힘들다. 유권자들에게는 ‘부자(父子) 대통령’에 이은 또다른 기득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존 해치 전미자동차노조(UAW) 1024지역 회장은 “백악관의 각종 미사여구에 지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직설적인 오바마의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며 “그의 생각과 비전을 들으면 그가 다음 세대를 대표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로 이 같은 참신함은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올해 46세인 오바마는 지난 2004년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일리노이주)이 됐다. 퍼스트레이디 8년을 거쳐 재선 상원의원이 된 힐러리나 6선 상원의원인 공화당의 매케인에 비하면 정치판에서는 ‘초보자’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오바마가 변화를 외치지만 정작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말만 앞세우는 ‘애송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 아래서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테드 소렌슨은 “케네디도 대통령 후보였을 당시 43세의 초선 상원의원이었다”면서 “케네디 역시 너무 젊고 경험이 적다는 이유 때문에 ‘이번에는 부통령이나 하는 게 적당할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미국인들의 최종 선택은 8개월 뒤에야 이뤄진다.
남은 시간만큼 변수도 만만치 않다.

물론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11월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과연 그의 약속대로 미국의 변화가 이뤄질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blue73@fnnews.com윤경현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