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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이사람] 주유소 ‘음악DJ’ 한갑산 현대오일뱅크 사원

조용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3.02 18:28

수정 2014.11.07 11:57



“보통 주유소에서 나오는 음악은 최신 댄스가요 일색입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 주유소에서는 가요는 물론, 재즈, 록, 가곡, 아리아, 퓨전, 뉴에이지, 팝페라 등이 시간과 장소에 맞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경희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면서 정유회사 직원으로 주유소 관리를 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 경기직영본부 사원 한갑산씨(29·사진).

지난 2006년 12월 입사한 사회 초년병으로서의 ‘풋풋함’과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의 순수한 열정이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그는 현대오일뱅크가 추구하는 ‘감성경영’에 활기를 불어넣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입사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던 지난해 봄 스스로 한 건의 기획서를 작성했다. 기획서 내용은 ‘주유소를 찾은 고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해질 무렵 도심의 주유소에서는 퇴근하는 샐러리맨들의 피곤을 달래주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이루마의 음악을, 국도 인근의 주유소에는 여행객들을 위해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주택가의 오전·오후시간에는 젊은 주부들을 타깃으로 임형주나 사라 브라이트만의 음악을 틀어주자는 것. 기존 주유소의 음악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아이디어였다.


회사측은 그의 제안을 즉각 수용했고 그에게 경기도지역 80여곳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시범실시하게끔 했다. 한씨는 각 주유소별로 고객 특성과 환경적인 특성을 고려해 음악을 선곡해 시간에 맞춰 음악을 틀게 했다. 이후 그는 3∼4개월 동안 퇴근하고 나서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주유소를 하나하나 들러 고객의 표정과 반응을 살폈다.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다.

어떤 신사분은 차안에서 지긋이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입으로 따라 부르는 분도 있었다. 가끔씩은 주유소 직원들에게 노래 제목을 물어오기도 했다.

피아노 전공자이면서 정유사에 입사한 것은 현대오일뱅크 서영태 사장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서 사장은 매년 가을이면 임직원 가족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가곡을 부르는 ‘감성경영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지난해 음악회에서는 이탈리아 가곡 ‘금지된 노래’와 뮤지컬 웨스트사이트 스토리 삽입곡인 ‘Tonight’을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회사라면 자신의 역량을 한껏 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입사를 결심했던 것.

한씨는 현재 주유소에서 인근 소규모 미술관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주유소에서 기름냄새뿐만 아니라 문화의 향기까지 난다면 세상이 조금더 아름다워지겠죠”라며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노력해서 ‘오일뱅크식 감성경영’의 마에스트로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yscho@fnnews.com 조용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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