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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과학기술’의 힘 아시나요/김승중 과학기술부장



#사례 1:요즘 ‘길치’인 주부들은 위성위치 확인시스템(GPS)이 장착된 길도우미(내비게이션) 하나만 있으면 전국 어느 곳이든 찾아갈 수 있다. 길도우미는 ‘달리는 지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택시기사들의 자존심도 무너뜨렸다.

그럼 GPS는 어떻게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일까. 그 정답은 ‘과학기술의 힘’이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GPS는 탄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지금 실생활 곳곳에서 응용되고 있다.

#사례 2:‘문명의 마술사’, ‘만능의 빛’으로 불리는 레이저도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CD플레이어, DVD, 레이저프린터는 물론 병원에 가면 사이버나이프 등 피를 흘리지 않고 수술하는 기구로도 쓰인다. 한국 반도체의 주역인 삼성전자의 힘도 레이저에서 나왔다. 레이저가 50나노(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수준) 정밀도의 미세한 회로를 실리콘 기판위에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처음 생각한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찰스 타운스이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제기했던 ‘전자파의 유도방사’를 이용해 엄청나게 강한 빛인 레이저를 만들어 냈다.

얼마 전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이 세상에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아인슈타인, 뉴턴, 파스퇴르, 퀴리 부인이라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과학자의 이름은 여기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세계 과학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거나 올릴 수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많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측우기, 해시계를 발명한 장영실이 있다. 이 뿐인가. 전기가 통하는 금속성 플라스틱을 개발한 이광희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 가뭄에도 끄떡없는 식물 재배의 길을 연 황인환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파킨슨씨병의 원인을 규명한 정종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 등등.

이들이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에서 천문학, 조선공학까지 다양하다.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세계 유수의 과학저널에 논문이 대서 특필되고 신기술을 개발해 외국에서 로열티를 받는 등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는 주인공들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은 조그마한 연구실에서 우리나라 미래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작금의 과학기술에 대한 본질은 외면한 채 정치적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현상 주위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0분간 모두발언을 했다. 존경받는 과학자인 그는 발언 대부분을 영어공교육 체제 면밀 검토, 대입 완전 자율화 등 교육분야에만 치중했다. 대신 과학기술 분야는 “과학기술은 국격, 즉 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우리 미래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일”이라며 원론적인 문제만 언급했다.

우수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과 과학기술 두뇌의 해외 유출 등 현재 위기에 처해 있는 국내 과학기술에 대한 원인과 처방은 전혀 없었다. 의원들도 질의 응답시간에 앞으로 있을 18대 총선만을 의식해 대학 등록금 인상 해소 방안 등 인기성 질문에만 급급했다.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지금 ‘샌드위치 위기’에 놓여 있는 ‘한국호’에 새로운 엔진(성장동력)을 장착시키기 위해선 ‘과학기술 입국(立國 )’을 말뿐인 ‘주변 어젠다(의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중심 어젠다’로 격상시켜 이를 범국가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특히 현 한국호를 이끌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은 ‘과학기술의 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간 정치에 집중된 국가 어젠다를 경제와 과학기술 쪽으로 옮기는 리더십를 발휘해야 한다.

/sej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