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바탕 위에 녹색과 붉은색이 선명한 맨드라미가 피어 있다. 꽃과 잎사귀, 그리고 줄기에 퍼져 있는 노란색 반점들은 마치 반딧불이 어두운 밤하늘을 떠다니는 듯하다. 그런데 맨드라미 그림은 먹이 드러나 있지 않은 채색화다. 기존의 남종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다.
매화와 포도 그림으로 잘 알려진 직헌 허달재(56)가 4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청담동 네이처포엠 빌딩 박여숙화랑에서 ‘허달재’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동양적 전통의 남종화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현대적 창작을 위해 노력해 온 작가가 기존의 문인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맨드라미 그림을 선보인다.
“할아버지(의재 허백련)로부터 ‘작가는 인품으로 그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사물의 형태보다 내용과 정신을 표현하는 남종화의 특성을 잇고 있는데 단순히 전통을 계승하기보다는 현대인의 심성에 맞도록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맨드라미라는 소재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쓰이는 다소 붉은색을 띤 한지의 바탕색은 찻잎을 우러낸 물에 일반 한지를 담가 만든 그만의 비법이다.
광주 무등산 자락의 ‘의재미술관’과 미술관 주변의 산등성이 차밭을 관리하는 작가는 서울 염곡동 자택과 광주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커피 같은 서양차는 향은 강하지만 여운이 없어요. 반면에 전통 차는 향은 강하지 않지만 마시고 난 뒤 오랜 여운이 남지요. 제 작품이 그런 깊은 맛을 내기를 바랍니다.”
차에 대한 그의 식견과 기호는 그림에 대한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이번 전시에는 처음 선보이는 ‘맨드라미’ 작품을 비롯해 매화, 포도 등 총 4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02)549-7575
/노정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