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지금도 공연중인 ‘그리스’는 NBC TV의 ‘그리스: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Grease:You’re the One That I Want)’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두 주연 배우를 새로 뽑았다.
‘그리스: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는 현재 미국에서 ‘아메리칸 아이돌’ 이후 많은 분야(춤, 연극, 음악 등)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형식을 따랐다. 예선을 통과한 14명의 도전자들이 11주 동안 매주 방송에 나와 ‘그리스’의 노래, 안무, 연기를 선보이며 겨루고 3명의 심사위원 점수와 시청자의 투표 점수로 최종적으로 2명의 주인공을 뽑았다. 기존의 오디션에서 벗어나 변화된 매체를 사용하는 동시에 그것으로 인한 홍보 효과도 노려보겠다는 기발한 발상이다.
사실 영화의 경우 개봉하기 전 내용이 새나가면 위험하다. 많은 경우 스토리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보통 가수들만 봐도 앨범 활동 초기에는 콘서트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대 공연에서만큼은 귀에 익숙한 리듬과 멜로디를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음악이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래가 흘러나가는 것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스: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는 이런 효과를 노렸다. TV 의존도가 높고 ‘그리스’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층에게 뮤지컬 넘버를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스토리라인은 숨기면서도 음악은 익숙하게 만들어 공연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스타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실력 있는 무명’을 캐스팅하겠다는 표면 아래에는 역으로 관객들이 직접 선택한 ‘안전한 스타’를 쓰겠다는 또다른 의미의 스타 마케팅이 존재한다. 11주 동안 TV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사실상 무명의 배우들은 유명해졌다.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직접 투표에 참여해 밀접한 관계까지 형성했다.
하지만 이렇게 달콤한 TV 캐스팅의 호객행위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관객의 투표 참여가 극의 캐릭터나 앙상블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자가 젊은 학생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적절한 캐스팅이 이뤄졌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갖고 있는 배우가, 그것도 무명의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그 압박감은 엄청날 것이다. 이번 공연의 두 주연배우인 맥스 크럼과 로라 오스네스 역시 공연 내내 대니와 샌디의 캐릭터 보다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드러나 보였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두 스타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다른 배역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약해져 버린 느낌마저 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캐스팅의 달콤함을 즐기려는 프로덕션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오는 8∼9월 공연되는 ‘마이 페어 레이디’와 ‘제너두’ 등이 TV를 통해 뮤지컬 배우를 뽑는다고 한다. 약은 잘 쓰면 명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고 한다. TV 캐스팅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슬기롭게 잘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뉴욕=bes271@gmail.com 송밝은통신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