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은 삶의 편린을 모아 아름답고 몽환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 ‘스크린 위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좀 감상적인 데가 없지 않다. 캘리포니아로 떠나길 간절히 희망하는 카페 여급 왕정문이 교통경찰 양조위를 짝사랑하고 금성무가 날짜 지난 파인애플 깡통을 모으며 무작정 애인을 기다리는 ‘중경삼림’(1994년)이 대표적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6일 개봉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중경삼림’의 할리우드 버전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노라 존스)가 재즈의 고향이기도 한 멤피스의 한 카페에서 경찰 복장을 한 남자를 만날 때 많은 사람들은 작은 미소를 짓는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였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다국적 영화다. 홍콩 출신의 왕가위가 메가폰을 잡고 프랑스 영화사인 카날 플뤼가 제작을 맡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다. ‘컴 어웨이 위드 미(Come Away with Me)’ 같은 노래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자 보컬상을 수상한 싱어송라이터 노라 존스를 비롯해 ‘클로저’의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먼,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레이첼 와이즈 등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함 그 자체다. 왕가위와 단짝을 이뤘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이번 작업에선 빠졌지만 ‘세븐’의 다리우스 콘쥐가 촬영하고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라이 쿠더가 음악을 맡은 이번 영화는 머쉬멜로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랑의 아픔을 겪은 엘리자베스가 사는 뉴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영화는 재즈의 고향인 멤피스와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마침표를 찍는다. 정확히 300일이 걸린 이 여행에서 엘리자베스는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다른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모두 엘리자베스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된 남자와 그로부터 헤어나기를 갈망하는 여자, 그리고 너무나 뒤늦게 큰 사랑을 깨달은 또다른 여자를 통해 엘리자베스는 한뼘만큼 성장하고 자신의 상처도 치유한다.
영화 곳곳에는 왕가위의 흔적이 역력하다. 왕가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의 골목길과 카페, 우수에 찬 듯하지만 경쾌하기도 한 음악, 그리고 느림과 빠름이 공존하는 편집 등 ‘왕가위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한 장면들이 무수히 목격된다. 특히 몽환적인 영상이 흐르는 장면마다 스타카토처럼 사용되는 음악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영화 사이트인 IMDB(www.imdb.com)가 매긴 평점은 7.1점(10점 만점). “왕가위의 경구적 금언들이 너무 진부해 영화를 피상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버라이어티 데일리)거나 “센티멘탈리즘으로 포장돼 있는, 원본이라기 보다는 카피본에 가까운 영화”(르 피가로)라는 불평도 참고할 필요는 있겠다. 12세 이상 관람가.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