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부 시대에 고속 성장을 이끌기 위해 노사가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상생 및 동반 성장을 할 수 있는 ‘신(新) 기업인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최우선 정책 과제인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무엇보다 노사 안정이 중요한 만큼 상생의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인 정신이 필수적이다.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폭등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가 ‘신한국호’라는 한 배를 탔다는 화합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소유만 추구하는 경영인과 분배만을 요구하는 근로자가 서로 충돌하면 ‘신한국호’라는 배가 산으로 오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난 80∼90년대 노사대립에서 2000년에 노사 화합을 넘어 친기업의 새 시대에는 노사가 한층 성숙한 동반 성장을 위해 협력 모델을 찾는 공동 노력이 요구된다.
■공동성장을 위한 노사 상생모델 부상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석래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7% 성장을 위해선 노사 안정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소유와 경영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면서 “자기 것만 챙기는 오너에게는 노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경영을 잘하는 최고경영자(CEO)에게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언급은 과거 수익창출과 회사 소유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경영인들의 마인드가 노사 동반 성장의 모델로 이미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사 공생이라는 ‘참기업인 정신’은 철강·조선·자동차·화학 등 과거 파업으로 얼룩진 사업장 등에서 이미 활성화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로 13년째 임금 협상안을 분규 없이 타결했다. 지난 88년 128일간의 최장기간 파업, 90년대 골리앗 농성 등으로 기억되는 현대중공업이 노사화합의 모델처럼 불릴 수 있게 된 것은 노사간의 믿음 덕분이었다.
지난 93·94년 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현대중공업은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단 한명도 강제로 해고하지 않으며 고용안정에 대한 믿음을 심어줬다.
이후 노조도 달라졌다. 90년대 후반 조선업이 불황에 빠졌을 때 노조가 나서 해외 선주들을 대상으로 수주활동에 나섰다. 2001년에는 미국의 엑손모빌이 8억달러짜리 원유 생산설비를 발주하자 당시 노조위원장이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시간외작업까지 하며 납기를 맞췄다. 정치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실리노선을 추구해 오던 노조는 2000년도에 민노총 연맹회비 납부를 중단하더니 2004년에는 아예 민노총에서 탈퇴했다. 노조원의 복지를 우선하겠다는 것이었다.
현대중공업처럼 과거 대립에서 상호 양보의 노사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살고 근로자가 원가 절감 등에 자발적으로 나서야 기업의 운영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진정한 화합의 개념이 점차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위원장 출신이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 노사신뢰의 모델도 올해 철강업계에서 나왔다.
철근 전문업체인 YK스틸(옛 한보철강)은 이달 초 노조위원장 출신 임원을 사장으로 맞이했다. YK스틸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최창대 전무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지난 1979년 말단사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 최 신임사장은 95년부터 2002년까지 약 7년간 YK스틸의 전신인 한보철강 부산제강소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최 사장은 한보철강 부도 당시 인수자를 직접 물색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등 YK스틸이 현재의 중견 철강업체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노조측의 적극적인 회사 살리기에 대한 답변으로 YK스틸은 전 노조위원장을 사장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결정하게 됐다.
■노사 공동주인의 마인드가 회사 살려
현대중공업와 YK스틸처럼 노사 화합의 상호 믿음 경영은 최근 자동차업계에서도 활성화 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사원대표위원회를 통한 노사간 상생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7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하고 있다. 사원대표는 또 CEO와 연 3회 직접 만나 경영 성과를 듣고 차기 연도의 경영목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물론 필요 시 최고 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각 본부장들을 직접 만나 경영현안을 듣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외환위기에 이은 빅딜, 법정관리, 해외매각 등의 경영위기를 맞았으나 노사가 합심하여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르노그룹의 아시아 지역 허브 역할을 확보했다. 특히 지속적인 투명경영 실천과 사원 삶의 질 향상, 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균형적으로 추구하는 윈-윈의 노사문화를 바탕으로 외투기업의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다.
위기 때마다 르노삼성차 노사간의 협력은 특히 빛났다. 르노삼성차는 지난 2004년 급격한 내수시장 위축으로 인해 성과급은 고사하고 적자를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실적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출범 후 그 동안 쌓아온 노사간 신뢰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임금협상에서 사원대표위원회가 먼저 회사에 임금동결을 제안한 것이다. 이런 노사 협력의 덕분에 르노삼성차는 2007년 노사문화대상 대기업부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비정규직·산별노조 등 새정부 걸림돌 많아
노사화합의 분위기가 새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사관계는 외국인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세계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노사관계 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몇 년째 꼴찌를 맴돌고 있다. IMD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대상 61개국 가운데 38위를 기록했다.2005년 29위에 비해 9단계 떨어진 것이다.
아울러 비정규직 문제는 새정부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할 노동계의 최대 현안으로 꼽힌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는 300인 이상 사업장 등에서만 적용되지만 올해 7월부터는 100∼299인 기업으로, 2009년에는 100인 미만 기업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올해 자동차 4사 등과 산별교섭(공동교섭)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이어서 ‘이중교섭과 이중파업’ 등을 이유로 산별교섭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경영계와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노동계의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지목되고 있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도 노사간 갈등을 증폭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CEO는 존경심을 유발해야 하며 직장은 자기발전의 장(場)이 돼야 한다. 그 밑바탕은 경영혁신과 생산성 향상이고 이는 기업의 주도 하에 노사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rainman@fnnews.com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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