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6일 유럽중앙은행(ECB)은 현 기준금리 4%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후에 더욱 침체에 빠진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ECB는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셈이다.
외환시장의 반응은 즉시 나타났다. 지난 2월 26일 유로화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달러 대비 환율이 이미 1.5달러를 넘어선데 이어 ECB의 금리 유지 발표 이후에는 유로당 1.54달러까지 치솟았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가 3%이고 3월 말에는 2.25%까지 인하될지도 모른다는 시장의 예상이 나돌고 있는 터라 당분간 유로는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프랑스의 은행인 나티시스의 애널리스트 노르딘 남은 몇 주안에 1.55에서 1.57달러 수준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존 국가들의 금융관련부처 장관들의 모임인 유로그룹은 이달 초 정례회동에서 과도한 환율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그 동안 강한 유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독일도 이번에는 우려 표명에 동참함으로써 이례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유가 및 곡물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럽 전역을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ECB는 3개월 전 올해 인플레율을 2.5%로 예상했으나 최근 2.9%로 예상치를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지난 2월에는 전년 대비 3.2%까지 인플레율이 치솟았다. ECB의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ECB가 더욱 우려하는 상황은 소위 ‘2차 효과’이다. 물가 인상이 임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 임금인상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미 독일에서는 몇 주전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했다가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경기부양도 실효를 거두지 못해 저성장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중앙은행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갖고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달리 ECB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물가 안정만을 중앙은행의 목표로 갖고 있기 때문에 개입할 유인이 더 적다.
금리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전문가는 지나치게 치솟는 환율을 억제하기 위해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유로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ECB에서 유로화를 발행해 그것으로 달러를 매입하는 것이다. 자국통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자국통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데는 이론적으로는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환시장 개입의 가능성도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꺼리는 ECB의 전통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7년이 넘도록 한번도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의 외환 시장 개입은 탄생 초기 유로화가 급락을 거듭하자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보유했던 달러를 시장에 파는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외환시장 개입이 효과를 거두려면 단독 개입보다는 합의 하에 관련 중앙은행들이 협조적으로 행동을 취할 때 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ECB가 외환 시장 개입에 나서더라도 미 연준이 개입에 협조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달러 약세가 수출에 기여해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 연준 역시 ECB와 마찬가지로 변동환율제 하에서는 환율은 시장에 의해서 결정돼야 한다고 보고 시장 개입은 극도로 꺼리는 오랜 문화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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