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한 대학로 골목길 안쪽에 2층짜리 주택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다. 두 가구가 앞 마당에 꽃을 심고 옹기종기 살기에 딱 좋은 집이다. 쇼틱 커뮤니케이션즈 김종헌 대표가 이 곳에 살림을 차렸다. 1층은 뮤지컬 제작팀, 2층은 조광화 연출자와 작가 이영란씨의 작업실이다.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거실에 놓인 커다란 탁자가 눈에 들어온다. 회의실을 대신하는 듯한 이 공간을 둘러싸고 사위에 서너평 남짓한 방이 4개나 있다. 방마다 리드미클한 음악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메아리친다. 화기애애 그 자체다.
■아동극 배우 출신, 송승환 대표와의 인연
그는 배우를 꿈꿨다. 여드름이 볼을 뒤덮던 사춘기 시절부터다. 청춘드라마 ‘사랑이 꽃피던 나무’를 보며 혼자 연기 연습을 했다. 배우로서의 이력은 1986년에 아동 인형극의 손가락 배우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이어 조연과 단역을 오갔다. 비중은 적었지만 무대 위에서 느끼는 기쁨은 컸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거란 확신까지 들었다.
그런 그를 확 바꾸어 놓은 건 1991년 12월에 현대중공업 체육관에서 올린 뮤지컬 ‘스크루지’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음향 오퍼레이터를 맡았는데 배우들이 매번 ‘반주가 딱딱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답답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노래를 초단위로 분석한 표를 만들어 잘때도 품에 안고 잘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그러기를 며칠째. 하루는 노래를 하던 배우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죠. 배우가 아닌 스태프들도 무대 위의 희열을 무대 뒤에서 느낀다는 것이죠. 배우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진 이유기도 했어요.”
1996년에 그는 환퍼포먼스를 만들어 활동하던 송승환 대표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마침 치아 교정을 시작했던터라 무대에 서기도 힘들었다. 딱 3년만 기획 업무를 배워보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PMC프로덕션이 설립되고 ‘난타’와 ‘달고나’ ‘뮤직 인 마이 하트’ 제작에 관여하면서 배우 생활은 끝이 났다. 대신 뮤지컬 제작자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2년간의 시행 착오…2008년이 진짜 시작
쇼틱 커뮤니케이션즈를 만든건 2년 전이다. 당초 그는 컨텐츠 도매업을 할 계획이었다. 될 성 싶은 대본과 음악을 골라내 제작사에 돈을 받고 파는 게 사업의 골자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원래 예상했던 작품과는 영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져서 많이 당황했죠. 잘만들고 못만들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작곡가와 작가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회의가 들었죠.”
그래서 지난해부턴 극장 혹은 제작사와 손잡고 공동제작을 했다. 뮤지컬 ‘첫사랑’은 뮤지컬 ‘헤드윅’ 제작사 쇼노트와, ‘컨페션’은 충무아트홀과 함께 만들었다.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제작자의 취향이 다르다보니 구미에 딱 맞는 작품이 나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단독 제작을 선언한다. 바로 올해부터다.
쇼틱은 오는 4월 5일부터 호암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남경주 최정원 주연의 ‘소리도둑’과 7월에 공연할 오만석, 조정석 주연의 무비컬 ‘내 마음의 풍금’ 두 편의 창작 초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오스카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무대서 재현하는 ‘행복한 왕자’는 내년께 정식 공연할 예정이지만 지방에선 올 연말에 만나볼 수 있다.
평소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김대표는 “사회가 각박해질 수록 사람들은 반대되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포근한 작품들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