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에서 9.9%로, 17%에서 4%로, 117%에서 39%로…’
서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 아일랜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수치다.
1984∼1993년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3.9%에 그쳤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 이후 2000년까지 연평균 9.9%를 기록했다.
1987년 18%에 달하던 실업률은 2000년 이후 4%대로 떨어져 완전고용 수준에 근접했다. 또 1987년 GDP 대비 117%에 달하던 국가부채는 2000년 39%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의 이방인 아일랜드는 1994년 중대한 변곡점을 찍었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재정위기와 고실업·저성장·고물가의 고통 속에서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되고 대량 이민사태가 지속되는 등 국가붕괴 지경까지 내몰렸다.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일랜드를 ‘자선을 구걸하는 거지’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마인드로 무장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사·정 간 ‘사회적 협약’을 체결해 경제재건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고 적극적 개방정책을 통해 기업유치에 올인했다. 정부의 모든 역량이 기업으로 쏠리면서 아일랜드는 초고속성장을 거듭했다. 바뀐 아일랜드를 모건스탠리는 동양의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에 비유, ‘켈틱 타이거’란 명칭을 부여했다. 아일랜드에는 지난 2005년 말 현재 1100여개의 외국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전체 GDP의 35%, 총수출의 75%를 외국 투자기업이 차지할 만큼 친기업 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연 7% 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경제강국이란 ‘747전략’을 내걸고 ‘비즈니스 프렌들리’, 친기업정부를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도 아일랜드의 기업정책을 취사선택해 원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부국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총리와 장관들은 공무원들에게 끊임없이 ‘아일랜드주식회사’의 직원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직사회에 확산된 민간 마인드는 자율과 유연성의 공직문화를 정착시켰다. 이는 기업정책에서 가장 큰 효과를 봤고 유럽내 최고의 기업천국으로 국가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기업업무를 맡고 있는 아일랜드개발청(IDA)과 엔터프라이즈아일랜드(EI) 등의 공무원들에게서 딱딱한 관료주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IDA는 외국기업 투자유치의 효율성을 위해 협상 전권을 갖고 있다. 상부 부처에는 보고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어서 통상 6주 정도면 외국 기업 유치협상을 마친다.
정부의 모든 조직을 친기업 환경으로 바꾸고 국적을 불문하며 기업유치에 매달린 결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단 10년 만에 1만달러대이던 국민소득을 3만달러 시대로 진입시켰다.
■과감한 규제개혁, 열린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80년대 40%였던 법인세율을 1999년 24%로 내렸고 2003년에는 12.5%까지 낮췄다. 그 결과 괄목할 만한 현상이 벌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델 등 세계 유수의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대거 아일랜드로 진출했다. 이는 유로 회원국 성장률의 3배가 넘는 쾌속 성장세를 구가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만으로 아일랜드의 변신을 설명할 수 없다. 다른 한쪽에선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환경 조성이 주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일랜드의 약진 배경에는 공무원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쏟아 부은 노력과 가치 공유가 있다. 특히 IDA의 과감한 투자유치 서비스와 그에 따르는 정부정책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리를 전담하는 IDA의 기능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파격적이다.
맞춤형 외국기업 유치와 관리, 고급 일자리 창출, 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쌓은 ‘도덕적 권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IDA의 의사 결정에 정부 모든 부처가 공감하고 지원하는 체제를 지녀 명실상부한 원스톱 서비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정부가 먼저 변해야 하는 이유를 IDA에서 찾을 수 있다.
■절차 유연성, 새 정부의 과제
이명박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기업규제 개혁 혁파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5000여개 규제개혁 과제를 선정,구체적 규제완화 혹은 폐지절차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행정시스템의 변혁과 함께 아일랜드식 ‘공직사회의 마인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적절한 보상체계를 통한 유인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박규원 기업정책팀장은 “유연한 공직사회의 마인드를 제도적으로 가능케 한 아일랜드나 영국, 싱가포르 등 영미법 계통의 나라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전규제부터 진입규제, 행위규제 등 각종 규제 철폐를 위해 새 정부가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규제 아닌 규제까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아일랜드식 절차적 유연성과 공직사회의 서비스 마인드를 바꾸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sky@fnnews.com차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