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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국경이 사라진다] 국제기준 조기도입국 싱가포르

안상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3.17 22:29

수정 2014.11.07 10:37

【싱가포르=안상미기자】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와 줄줄이 늘어선 빌딩들로 둘러싸인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다른 이름은 ‘금융 허브’다.

지난 1970년대 말 조성된 역외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해외자금 조달 등 금융활동을 자율화했고 역내 금융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감독제도로 신뢰성을 높였다.

싱가포르에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바로 금융서비스업.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금융 허브를 꿈꾸는 싱가포르의 선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금융 허브를 노리는 아시아 각국에 ‘교과서’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투명성과 신뢰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회계기준과 관련해 쏟는 이들의 정성은 각별하다.

지난해 8월 회계기준법이 통과됐으며 좀 더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기업들에게 기준을 제시할 새로운 회계위원회도 올해 중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IFRS, 2005년 전면 시행

재무제표의 작성 절차, 공시 시스템, 재무정보 시스템, 경영성과 지표, 경영 의사결정 등 기업의 전반적인 재무보고 시스템과 회계 및 자본시장의 감독법규, 실무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규정한 국제회계기준(IFRS)은 국제회계기준위윈회(IASC)가 마련한 옛 국제회계기준(IAS·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을 2003년부터 확대한 것으로 세계 증시와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회계기준이다.


싱가포르 회계기준인 싱가포르-갭(GAAP)은 원래부터 이 IAS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IFRS 도입에 한국처럼 대대적인 정비 절차는 필요없었다. 따라서 국내 경제나 산업 사정에 맞게 몇몇 조항만 수정하고는 2005년 모든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가 기존 싱가포르-갭에서 수정된 부분이나 새로운 기준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회계위원회의 발빠른 대처였다. 지난 2002년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회계기준 제정 기관으로 CCDG(Coucil in Corporate Disclosure and Governance) 설립했다.

언스트 앤 영(E&Y) 싱가포르 나가레이 시바람 파트너는 “CCDG는 분기별로 국제회계위원회가 공표한 의제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시행해야 할 새로운 조항이나 다른 해석에 대해 승인하고 적용토록 하고 있다”며 “변화하는 흐름에 빠르게 대처하고 판단할 수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또 기본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해석이나 번역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점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싱가포르 정부는 감독기능 등 CCDG보다 좀 더 폭넓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회계위원회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 해외진출, 해외자금 국내유치 모두 증가

인구 450만명(2006년 말 기준)의 도시국가 싱가포르. 이 좁은 내수 시장만을 바라봤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은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해외로부터는 투자를 유치하고 국내 기업은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싱가포르의 살 길이었다. 이 모두를 위해 IFRS의 빠른 정착은 필요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은 IFRS 도입으로 훨씬 수월해졌다는 평가다. 해외자금 유치를 위해 IFRS 적용이 도움은 됐겠지만 사실 세제혜택이나 업무효율성이 외자유치엔 더 결정적이다.

하지만 회계기준이 다를 경우 싱가포르기업의 해외진출 자체가 번거롭거나 꺼려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IFRS는 해외진출에 결정적 기반이 된 셈.

국내 기업으로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한 STX팬오션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STX팬오션은 한국에서는 K-GAAP를 적용한 재무보고서를 쓰지만 싱가포르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IFRS를 적용한 재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물류 중심지라는 이점 때문에 싱가포르 상장을 결정했지만 이중작성의 어려움과 비용은 아직도 부담이 되고 있다.

물류회사인 솅커 싱가포르 재무담당자 데이비드 림은 “IFRS는 어떤 투자자들이 봐도 한눈에 재무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며 “솅커의 경우 거의 전 세계에 지사나 현지법인이 있어 일찍부터 IFRS를 적용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남은 숙제는

싱가포르는 국제 회계업계에서도 IFRS를 ‘그대로(word for word)’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산업구조와 문화 속에서 여전히 어려움은 남아 있다.

원칙 중심의 IFRS를 적용하는 데 있어 어떻게 가치를 산정하고 범위를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다. 처음 전면 시행 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다른 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지 파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싱가포르 갭과 IFRS 사이에서 좁혀지지 못한 차이점들이 남아 있다. IFRS가 공정가치에 대한 재평가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싱가포르는 1984년에서 1996년 사이에 평가됐던 자산과 공장, 설비시설 등의 가치는 재평가가 요구되지 않았다.


또 임차인은 실질적으로 부동산 소유에 대한 어떤 득실도 회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연결재무제표 적용이나 조인트벤처 투자 회계처리에 있어서도 몇몇 다른 점이 있다.


E&Y 싱가포르 나가레이 파트너는 “지금까지 IFRS 적용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자산에 관한 것이었다”며 “지난해부터는 이에 관해서도 차이점들을 하나씩 맞춰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hug@fnnews.com안상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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