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불확실성에 관한 연구로 지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 교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한국어판 특별기고문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또 “한국의 자본시장을 자유화한 결과 골드만삭스와 같은 월가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었고, 그 대가로 한국은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고 덧붙였다. 월가의 기업들은 한국의 국영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전에, 급속히 민영화되기를 원했다.
미 재무부와 IMF는 급격화 자유화가 순식간에 위기를 몰고 왔음에도 자신들의 잘못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가 재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바로 그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쟁정책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었고,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투명성이 낮다고 해서 외환위기가 온다는 IMF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투명성이 높은 스칸디나비아의 경우에도 금융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위기에 취약하지도 않았으며 위기를 겪을 가능성도 훨씬 낮았다. 그럼에도 미 재무부와 IMF는 이 지역에 자금을 쏟아붓고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가라고 부추겼던 국제은행들이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방패막이로 삼았을 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 IMF와 미 재무부가 왜 투명성을 외환위기의 원인이라고 강변했을까. 그에 따르면 미 재무부와 IMF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정책, 그 중에서도 특히 성급한 자본시장 자유화 정책이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자유화로 자금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지만, 그렇게 쏟아져 들어온 돈은 시장을 황폐화시킨 뒤 일시에 빠져나가버렸다.
미 재무부와 IMF는 문제의 원인을 잘못 규명한데다가 이들이 내린 처방은 더 심각했다는 분석이다. 금리인상과 엄격한 재정정책을 요구함으로써 한국의 위기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와 IMF의 정책 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로 자본이 쏟아져 들어갈 당시 큰 수익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후 한국이 재고처분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은 자산을 사들이면서 더 큰 돈을 벌어들였다. IMF는 ‘해외전문가들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감언이설로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구슬려 재산을 염가에 매각하도록 했다는 게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최종 분석이다.
제대로 된 금융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은 금융투기꾼들에게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 시장이었다. 팔짱 끼고 앉아 경제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자산을 되팔아 수억 달러의 차익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시장 말이다. 뿐만 아니라 IMF는 한국에게 조세회피 가능성에 대해 충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투자자들은 이러한 허점을 이용해 엄청난 횡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이득세조차 한푼도 내지 않았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noja@fnnews.com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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