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함께 시작된 봄소식은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로 절정을 이룬다. 봄철에 가득 피어나는 진달래는 흔하디 흔한 꽃이지만 한국인들에게 아스라한 옛 추억을 안기는 특별한 꽃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난 후 황량한 산야를 고운 분홍빛으로 물들여 가는 진달래에 미래의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진달래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해온 작가 김정수(53)가 오는 4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734-7555)에서 ‘김정수 진달래 그림’ 초대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위하여’와 ‘기억의 저편’에 이은 ‘축복 시리즈’가 선보인다.
작품에는 이전의 전시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진달래가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바구니에 진달래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우리가 잘 자라기를 바라며 기원하고 희생했으므로 우리도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의 사랑과 고마움을 돌려드리자는 의도에서다.
김정수가 진달래를 그리는 작업은 진달래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꽃을 피우는 과정과 닮았다. 아사천에 바탕색을 칠해 먼저 짙은 붉은 색이 배어 나오게 한 다음에 여러번 색깔을 덧입혀 조금씩 진달래 색깔이 드러나게 한다. 일곱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짙은 진달래색을 얻을 수 있다.
“진달래 색깔을 내는데 굉장히 신경을 써요. 색깔이 너무 짙으면 철쭉이 돼 버리고 너무 옅으면 벚꽃이 돼 버리고 푸른색이 감돌면 패랭이꽃이 돼 버리죠. 흰색, 검은 색, 푸른 색, 빨간 색, 분홍색 5가지 색을 골고루 섞어 쓰면서 진달래가 가지고 있는 아스라한 멋을 드러내기 위해 반투명으로 그립니다.”
최근 그의 진달래가 컬렉터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려 나가자 진달래를 그리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정수가 그려내는 진달래 색깔과 자태를 못 따라간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김정수가 이토록 진달래에 매달리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에 태어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화랑가의 대표적 거리인 생 재르망 데프레 센가 22번지에 있는 갤러리 발메(VALMAY) 전속작가로 그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작가였다.
그런데 한국 프랑스문화원 초대전 때 일시 귀국해 서울 종로 2가 지하철역을 지나갈 때 김수희의 노래 ‘애모’가 흘러나왔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라는 가사는 샹송의 울림과 근본부터 달랐고 가슴에 스며드는 느낌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 정서에 가장 깊이 와닿는 이미지를 찾아서 고민하던 중 어린시절 어머니와 마을 뒷동산에 올라가 보았던 진달래가 떠올랐다. 그 진달래는 화사하기도 하고 한을 품은 것 같기도 하고 희망을 지니기도 한, ‘아스라한 멋’이 느껴지는 꽃이었다.
보길도에서 설악산까지 진달래 길을 따라 여행을 하며 스케치를 한 김정수는 2004년 귀국전을 시작으로 진달래 작품을 내놓고 있다. “제 작품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반추할 수 있고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가슴 속에서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한편, 작가는 오는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도쿄 긴자거리에 있는 갤러리 기구타에서 ‘김정수 진달래 그림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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