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다름 아닌 미술동네사람들이다. 미술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형성에 기여하지 못했고 스스로들 작품가가 자신의 예술적 또는 작가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처럼 행동한 때문이다. 또 미술품은 경제적 재화 이전에 문화적 예술적 재화라는 점을 알려주지 못한데 있다.
‘배추’와 ‘꽃’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같은 식물 종에 속하지만 각각의 의미와 역할은 다르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알길 없는 아니 알지 못하는, 잘 살아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우리들에게 미술품은 단지 지상최고, 최후의 사치품 일 뿐이다. 이런 현실은 미술품에 대해 천박한 관심과 이해로 나타난다. 우리에게 삼성이라는 단어는 양면적 가치를 지닌다. 한없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제공한다. 그것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가질 수 없을 때는 가차 없이 ‘신포도’라고 단정해 버린다. 이런 ‘삼성과 미술’이 결합하면 애증의 대상이 되고 만다.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은 선대 고 이병철회장으로 올라간다. 그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고 귀한 작품은 거액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문화재 수집은 가문의 전통으로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가와 미술관에서 소장 전시하는 미술문화재에 대한 국민감정은 ‘우리 것을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우호적이다. 때로는 존경을 보낸다. 그러나 미술품에 이르면 문제는 달라지고 태도는 돌변한다. 문제는 미술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주요 진열품 중 80%가 미술품인 것처럼 미술품은 문화재의 한 종류이다. 따라서 미술품과 문화재는 다르다는 오해가 이번 사태확대의 발단이다.
물론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에 비자금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고 정주영회장의 “권력자에게 수십, 수백억 원씩 갖다 바쳤다.”는 토로처럼 통상의 비자금이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에 제공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이번 비자금 수사는 미술품 수사가 되고 말았다. 사실 비자금 의혹을 밝히는 과정에서부터 미술품이 비자금의 몸통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해 왔던 터이다. 왜냐하면 이번 비자금 사태의 폭로도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7조 2000억에 달한다는 비자금중 미술품 구입액은 600억에 불과하다. 가정이지만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에 줄 비자금을 모았다 남은 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을 수도 있다. 사실 비자금이 아닌 돈으로 미술품을 소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으로 흘러가야만 했던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소장했다면 이는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비자금 조성액의 8%에 불과한 미술품 구입에만 수사에 열을 올리는 걸까. 이는 미술품 그것도 특히 고가의 미술품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국민 일반의 여론을 자극해서 비자금사건의 본말을 흐리려는 의도는 아닐까. 왜냐하면 폭로 시 비자금을 주었다는 권력기관 종사자들 명단도 함께 발표했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소환되거나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는 접한바 없다. 이런 때문에 미술품에 관한 일반국민의 증오심에 편승해서 비자금 사건의 몸통과 꼬리를 자르려는 의도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미술인들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구정연휴 마지막 날 우리는 숭례문을 불태워 먹은 역사와 민족 그리고 세계민들에게 죄인이 되었다. 우리가 평소 별 관심 없이 지나치던 숭례문 소실이 허탈을 넘어 공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목조건물 한 채에 불과한 것이 우리를 상실감에 빠지게 하는 이유는 무얼까. 여기에는 우리가 평소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가슴 짠함과 말로 숫자로 가늠 할 수 없는 그의 역사적 문화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와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당하고도 우리는 숭례문을 9,500만 원 짜리로 보는 공무원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문화를 배추로만 보는 태도로 일관한다. 미술품을 상속의 수단으로 치부의 수단으로 보는 것도 천박한 태도이다. 처분할지 상속할지 미술관에 기부할지 모르는 미래의 일을 그림한번 사보지 않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논하지 말자. 어느 곳에 있건 누구의 소유이건 미술품은 공공재인 동시에 문화재이자 인류의 자산인 때문이다. 더 이상 바미얀 석굴을 표적 삼은 탈레반이 되지 말자.
/글/ 정준모(문화정책,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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