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폴 포츠와 휘진을 아십니까?/정순민 문화레저부 차장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폴 포츠라는 오페라 가수를 아십니까. 올해 서른 여덟 살의 폴 포츠는 요즘 깔끔하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유명 인사가 됐지만 1년 전만해도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휴대전화를 팔러다니던 외판원이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의 꿈을 스스로 포기했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폴 포츠는 어린 시절 어눌한 말투와 못생긴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노래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오페라단을 찾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하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악성종양 발병과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른 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브리튼스 갓 탤런트’(영국의 TV 스타발굴 프로그램)에 출전하게 된 것도 오로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곧 첫 음반을 내게 됐는데 그 제목이 ‘원 찬스(One Chance)’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꼭 움켜쥔 셈이죠.

폴 포츠와 유사한 인생유전을 겪은 ‘한국판 폴 포츠’가 국내에도 있습니다. 올해 서른 한 살의 팝페라 가수 휘진(본명 권휘진)은 공업고를 졸업했습니다. 휘진의 어린 시절 꿈은 호세 카레라스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음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학 대신 직장을 선택한 그는 그러나 늘 허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성악가가 되겠다던 어린 시절의 그 꿈 때문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남몰래 레슨을 받던 그는 스물 세 살의 나이에 드디어 대학(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또 한 차례의 시련이 닥칩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에 갔다가 성대 결절이라는, 성악가로서는 치명적인 병을 얻었습니다. 고생 끝에 몸을 추스린 휘진은 지난 1일 생애 첫 앨범 ‘페이스’를 내놓았습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뒤늦게, 혹은 천신만고 끝에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목’, ‘엄마의 말뚝’ 같은 소설을 쓴 박완서 선생도 마흔살이 되기 전까지는 ‘솥뚜껑 운전’을 하던 주부였습니다. 주부의 역할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선생은 아이들 키우고 살림에 묻혀 살면서도 문학소녀 시절의 꿈을 절대 놓치 않았습니다. 아니, 어느날 문득 그 시절의 꿈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도 마흔 일곱 이전까지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의 직업은 신문기자였지요. 그는 80년대 문학담당 기자를 하면서 작가들을 취재했습니다. 그가 첫 소설을 내놓은 것은 지난 95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됐던 그의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은 불행하게도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문학의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은 지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칼의 노래’였지요. 모르긴 해도 그 역시 문학청년 시절의 꿈을 한시도 내려놓은 적이 없을 겁니다.

꿈이 있다면 이뤄집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네가 된다고 생각하든 안된다고 생각하든 너의 생각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지레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누가 꿈을 이룰 확률이 더 높겠습니까. 당연히 앞의 사람에게 더 많은 찬스와 기회가 오겠지요. 이런 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꿈은 이뤄진다”고 주문을 걸어봅시다. 유난히 봄볕이 따뜻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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