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이곳 신작로를 따라 오르자 한국 의류업체 신원의 봉제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여 앞둔 봉제 공장 안에 들어서자 수천 명의 여성 근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미싱질, 손바느질을 하는 장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니트 의류를 봉제하는 스무 살 안팎의 현지인 여성 근로자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흡사 옛 70년대 서울 구로공단의 모습과 유사하다.
아직 낙후된 동남아의 시골 분위기가 이국적인 까라왕 지역에 들어선 의류 공장의 웅장함에 놀란 것도 잠시. 사무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또 한번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박성철 신원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 이슬람교인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움찔 놀랐다.
신원 인도네시아 법인에서 근무하는 현지인들은 대부분이 이슬람교인들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인 2억2000만명의 인구 중 90% 가까이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신원의 인도네시아 법인에선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엄연히 공존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충돌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적인 사풍에 따라 신원은 매주 월요일 아침에 공동 예배를 보면서 1주일을 시작하다 보니 이슬람교를 믿는 직원들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악조건이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어른인 촌장과 이장들을 설득해 지역발전에 공헌이 높은 기업 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신원은 기독교적인 사풍을 이어가게 됐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함께 모여 공동 기도도 한다.
그 대신 신원측도 이슬람교를 믿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이슬람 전통을 존중해 공장 내에 이슬람교인들을 위한 기도 장소를 따로 제공했다.
이처럼 민감한 종교적 마찰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원 같은 기독교주의 기업까지 인도네시아 진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 때문이다.
아울러 경쟁국인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인건비 상승률이 낮다. 중국은 올해부터 발효된 신노동법 등으로 인건비가 급등하고 있다. 베트남은 하노이 지역을 중심으로 인건비 상승률이 중국 못지않게 높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의 단순 가공업체들은 이미 철수를 시작했고 베트남도 향후 5년 내로 하노이 등을 중심으로 중국과 같은 ‘엑소더스(탈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온순한 국민성도 노동집약적 산업에는 딱 들어맞았다. 현지인 7500여명을 고용 중인 의류업체 한솔의 김선 법인장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서 근로자들의 스트라이크(파업)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약한 편이 있다”면서 “인도네시아 국민성이 온화하고 순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봉제사업이 확실한 성공의 미래 보증수표는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노동력이 보장되지만 노동환경 개선비 부담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현지인 1200여명을 고용 중인 니트 의류업체 두산의 배도윤 사장은 “미국 등의 주요 바이어들은 주문을 내기 전에 현지 공장의 노동환경 등에 대한 기준까지 꼼꼼히 챙기는 등 까다로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인도네시아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보다 노동 안정성 면에서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이라는 전망이 아직 우세하다.
인도네시아 한인봉제협회 김경곤 회장(서광 대표)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인 기업 중 대부분이 봉제업체로 250여 곳에서 섬유 제조업을 하고 있다”면서 “향후 5∼10년 이상 봉제업이 인도네시아에서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ainman@fnnews.com
■사진설명=의류업체 신원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카라왕 지역에 건설한 니트 의류 공장을 2년 전 증축했다. 이 공장에서 현지 직원들이 지난 12일 옷감을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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