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논술 시네마] 꿀벌 대소동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4.16 15:54

수정 2014.11.07 08:24



“먹었으면 꿀 값 내놔!” 건방진 표정의 꿀벌 한 마리가 인간들에게 내뱉는 요구다.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은 꿀벌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들의 꿀을 채취해 가는 인간들에게 소송을 거는 소동을 담고 있다. 꿀벌 대학을 갓 졸업한 베리는 인간 세상으로 날아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세계를 경험한다. 우연히 마트에 들어가게 된 그는 인간들이 자신의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모은 꿀을 가져가 버젓이 상품으로 팔고 있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꿀의 생산지를 찾아 나선다. 대형 벌꿀 농장을 찾아낸 베리는 비좁은 벌통에 갇혀 꿀을 착취당하는 동료들의 비참한 현실에 경악하며 인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인간과의 치열한 공방 끝에 꿀벌을 대표하는 베리가 승리, 인간들은 더 이상 꿀벌들의 꿀을 가져갈 수 없게 되고 꿀벌들은 인간들로부터 빼앗긴 꿀을 돌려받는다. 꿀벌 세계에서는 꿀의 재고량이 넘쳐나 더 이상 꿀 생산 공장을 가동할 필요가 없게 되자 부지런한 꿀벌들은 일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꿀벌들의 세상이 아닌 바깥에서 벌어진다. 꿀벌들은 꿀을 채취하면서 꽃의 수정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꿀벌들이 더 이상 꿀을 채취하지 않기 때문에 꽃과 유실수들이 모두 말라 죽고 생태계가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꽃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아둔 꿀이 없어지면 꿀벌들은 멸종하고 말 지경에 이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베리는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장미 퍼레이드에서 꽃가루를 찾아내 동료들과 함께 지상에 꽃가루를 퍼뜨려 생태계의 위기를 막는다. 이후 인간들은 다시 꿀을 채취할 수 있게 되고, 꿀벌들 역시 예전처럼 꿀을 모으고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꿀벌 대소동’은 경제학 용어인 ‘외부효과(external effect)’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외부효과’란 한 사람의 경제적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현상을 말한다. 양봉업자 덕분에 수확이 늘어난 과수원 주인처럼 긍정적 외부효과를 ‘외부경제(external economy)’라 하고, 폐수를 방출한 공장 주인 때문에 벼농사를 망친 농부처럼 부정적 외부효과를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라고 한다.

비록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닌 생존활동이긴 하지만 꿀벌의 꿀 채취활동은 인간들에게 많은 경제적 혜택을 준다. 꿀벌은 대표적인 꽃가루 매개 곤충으로서 꿀벌 개체와 활동량은 곡물과 과일의 생산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꿀벌의 개체 감소가 농업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꿀벌의 개체가 감소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기후변화, 환경오염, 전자파, 유전자변형 식물의 독성 등 대부분 인간 활동이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꿀벌은 인간에게 외부경제를 선사하지만 인간은 꿀벌에게 외부불경제 수준의 손해뿐 아니라 멸종 위협이라는 재앙을 안겨주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꿀벌의 개체 감소가 곧 인간의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기근과 전쟁 등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꿀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자연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대가 없는 혜택을 제공한다. 꿀벌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양봉업자가 없듯이 누에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양잠업자도 없다. 마찬가지로 젖소에게 젖을 짜내고 고기를 얻으면서도 소에게 ‘급여’를 주는 축산업자 역시 있을 리 만무하다. 이렇듯 인간이 자연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수취하는 것을 지지하는 강력한 사상적 토대는 존 로크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통치론’에서 “대지와 그것에 속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인간이 “자연이 제공한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고 주장하며 자연물에 대한 인간의 소유권을 정당화했다. 로크의 이와 같은 주장은 가치의 원천은 인간의 노동이라는 근대 경제학의 ‘노동가치설’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인간이 취하는 모든 가치가 인간의 노동을 원천으로 하는 이상 자연물에 대가를 지불할 이유는 없다.


경제학에서 다양한 재화의 가치를 비교할 동일한 척도의 필요성에 따라 대두된 노동가치설의 등장은 제쳐 두고라도 ‘자연은 인간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로크의 생각은 자연과 인간이 상생관계에 있음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꿀벌의 개체 감소가 곡물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는 현실처럼 인간과 꿀벌의 관계만 보더라도 이 점은 명확해진다.
‘꿀벌 대소동’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꿀벌의 우화(Fable of the Bee)’인 셈이다.

―박진성, ㈜엘림에듀 논술연구소

■사진설명=경제학 용어 ‘외부 효과’를 잘 표현한 애니메이션 영화 ‘꿀벌 대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