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기성복과 같아서 이를 집행하는 판사가 다양한 세상사에 맞게 수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 10부 박철 부장판사(49)는 법은 윤리가 아니기 때문에 법관의 판결은 기계에서 찍어내는 식이 아니라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판사는 수많은 민사재판을 다루면서 이런 가치관을 판결에 접목시켜 왔다.
그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문제를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책임을 묻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최근 재판에서도 그랬다.
열 한살짜리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담임교사와 이 학교를 운영하는 서울시를 상대로 피해 부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가해 교사보다 지자체의 책임이 크다고 지난 4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서울시는 피해 가족들에게 1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면서 이중 6000만원은 가해교사와 함께 배상하라”며 지자체에 배상책임을 더 물었다.
1심은 서울시와 가해교사가 함께 3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성추행 이후 급우들에게 ‘왕따’가 돼버린 아이 및 그 부모들의 상처를 방치한 교사나 학교보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지자체의 책임이 더 무겁다는 취지”라며 “공동체의 병리현상에서 생긴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우리 사회가 일말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아름다운 판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딸의 실수로 아파트 명의를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은 70대 할아버지를 상대로 계약이 끝난 임대아파트의 명의를 넘기고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벌였다.
박 부장판사는 “명의는 다르지만 실제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던 피고가 사회 통념상 충분히 임차인 자격이 있기 때문에 우선분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 공익에 맞다”며 절박했던 할아버지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고법에 근무했던 2006년 11월의 일이다.
이 때 박 부장판사는 판결문 뒷부분에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로 시작하는 감성적인 글귀를 적어 화제가 됐다.
박 부장판사는 “몇 번의 감성적인 글을 적은 것은 정서적으로도 판결의 설득력을 높이고 보통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판결문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법관은 법의 집행자지만 창조적인 판결을 통해 어느 정도 ‘사법입법’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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