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이물질 발견은 로또다? ‘고무줄 보상’ 이제 그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4.30 20:02

수정 2014.11.07 06:15



"이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팔아 국민건강을 위협하고서도 제품 1박스로 무마하려는 겁니까."(소비자)

"원래는 1대 1 교환이 원칙인데 저희가 사과하는 의미에서 1박스를 드리는 겁니다."(제조업체 직원)

이물질이 들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제조업체 A사 직원과 이를 신고한 소비자 간의 대화 내용이다.

소비자로서는 해당 제품 1박스를 들고 와 이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과 교환하려는 제조업체의 행태에 분노가 느껴지고 제조업체 직원은 소비자 피해보상규정 이상의 보상을 해주는데도 불만을 터트리는 소비자가 야속하다.

제조사와 소비자 간 이 같은 논란은 결국 "언론에 알려 본때를 보여주겠다."(소비자), "돈 노리는 거지 뭐"(제조사)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처럼 이물질을 놓고 소비자와 제조사가 팽팽히 맞서는 것은 이물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피해보상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행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이물질이 발견됐을 시 소비자 신체에 탈이 나지 않는 한 환불 또는 1대 1 현물교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소비자와 현행 보상규정을 지키려는 식품업계 간 인식의 차이가 워낙 커 실제로 환불이나 1대 1 현물교환만으로 소비자의 크레임이 해결되는 사례는 거의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어디까지를 이물질로 볼 것인지에 대한 규정도 없고 제조공정에서 들어간 이물질과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이물질에 대한 책임소재 등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보상 규정이 이물질 혼입을 미끼로 돈을 뜯는 이른바 식파라치를 양산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고의로 이물질을 집어 넣어 협박하는 범죄행위로 인한 기업과 소비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월 A사는 소비자의 이물질 혼입 신고를 받고 소비자에게 500만원을 주고 더 이상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B사도 이물질이 나왔다는 소비자 민원을 받고 같은 제품 10박스와 300만원을 줘 무마했다.

이와 관련, 식품업계는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에 섭섭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물질 사건으로 국민에 걱정을 끼친 것은 미안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식품업계를 불량식품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물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피해보상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물질 혼입을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물질 혼입은 식품 공정상 100%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정부 차원에서 이물질에 대해 세부적인 보상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이물질 로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이물질을 놓고 제조사와 소비자 간 간극이 벌어진 상황에서 명확한 피해보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박기환 교수는 "미국의 경우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물 중 인간에게 위험을 주는 크기 등을 철저히 규명해 규정을 세웠다"며 "과학적인 근거로 이물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이물질 발견 시 자발적으로 기업이 리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yoon@fnnews.com윤정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