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진기업 흥망사에서 배우자] <5> 일본을 먹여살린 기업들의 흥망성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5.26 16:55

수정 2014.11.07 03:29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혁신하는 기업은 ‘흥’하고 성을 쌓은 채 안주하는 기업은 ‘망’한다.”

지난 1950년대 휘청거리던 도요타자동차는 세계 1위를 넘보고 있지만 제너럴일렉트릭(GM)은 기울고 있다. 일본의 자존심 소니는 MP3플레이어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줬다. 소니는 TV시장에서는 한국의 삼성전자에도 밀렸다.

글로벌시장의 맹주이던 대기업이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이름 모를 기업이 돌연 세상을 호령하는 강자로 올라서기도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가 변화무쌍하다.

이런 기업의 흥망성쇠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양상이다. 특히 경제대국 일본 대기업의 흥망성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닛케이비즈니스지가 지난 100년간 일본 100대 기업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수명은 30년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문제는 이런 장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로 일본 기업의 간판이었던 소니는 한국의 삼성전자에 추월당했다. 소니는 현실에 안주했고 삼성은 변화에 혁신으로 대응한 결과다. 결국 경영혁신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다.

GE의 잭 웰치 전 회장은 “혁신은 멈출 수 없는 영원한 나그넷길”이라며 “나그네란 집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집을 떠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이라고 들려줬다.

특검 사태 이후 경영쇄신을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면서 경영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일본 간판 대기업의 흥망

일본을 대표하는 간판급 대기업들의 과거와 현재는 한마디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이들 대기업의 굴곡은 국내외 다른 기업들에 더할 나위 없는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대표적 일본 기업이 도요타그룹이다. 도요타는 이미 일본을 넘어 세계 일류기업으로 추앙받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92년 2·4분기 연결 매출이 10조2000억엔, 순이익 2400억엔으로 일본 제조업 중 최고를 기록했다. 중심 회사는 도요타그룹의 전신인 도요타자동직기를 비롯한 직계 12개사. 또 도요타 산하의 일차 부품 메이커 조직인 ‘교후회’에는 77개사가 소속되어 있다. 이런 탄탄한 조직은 높은 수익을 올리게 했다.

그러나 도요타는 지난 90년대 말부터 국내 판매 부진으로 이익이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미일구조협의회에서 이른바 계열화가 일본의 폐쇄적인 시장구조의 원흉으로 지적을 받자 도요타도 그 표적이 되어 곤궁에 빠졌다.

그러나 도요타는 뼈를 깎는 원가절감과 기술혁신을 통해 재도약에 성공한다. 도요타는 기획 단계부터 연구개발, 부품 구매, 생산, 판매, 금융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수직·수평계열화를 거의 완벽하게 구축했다. 도요타는 생산단가가 계속 내려가고 품질이 좋아지는 데다 국내외 생산 차종 포트폴리오가 효율적이어서 실적개선으로 이어졌다. 안정된 노사 관계도 크게 기여했다. 이런 가운데 도요타는 독립 메이커인 렉서스가 전 세계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차세대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국 도요타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강 GM을 위협하는 자동차 최강의 메이커로 부상했다.

전자 분야 일본의 자존심인 소니도 흥망이 교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워크맨 신화’ 등으로 세계 전자산업의 최강자 자리를 누렸던 소니는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에 추월당했다.

본래 소니는 지난 1946년 이부카 마사루 등의 기술자들이 세운 도쿄통신공업이 전신이다. 1958년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1949년 테이프식 자기녹음기의 시작 제1호를 완성했고 1950년 일본 최초의 테이프리코더 G형을 발매했다. 그 후 테이프리코더·트랜지스터라디오·트랜지스터텔레비전·비디오테이프리코더(VTR) 등을 개발, 일본 굴지의 전자기기 전문 제조업체로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에도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전자제품을 줄줄이 쏟아냈다. 단연 세계 1위였다.

소니는 워크맨 브랜드로 소형 음향기기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소니는 매출도 지속적으로 오르게 되고 브랜드 가치도 상승했다. 하지만 소니는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에 위기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다. 기업에 위기의식이 없다면 기업은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된다.

소니는 2000년대 들어 가전 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기 시작했다. 특히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에선 일본 마쓰시타에 밀렸다. 이어 소니의 자존심이던 워크맨은 애플의 MP3플레이어에 밀려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소니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액정표시장치(LCD) TV를 비롯한 TV시장에서 소니를 추월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6년 소니의 텃밭인 북미시장에서 1위를 기록해 소니의 자존심을 구겼다.

일본 중후장대산업의 간판인 미쓰비시도 굴곡이 심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쓰비시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와 함께 첫발을 내디뎌 관업불하, 식산흥업, 군수산업 등 중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특히 한국전쟁을 거쳐 그룹으로서 고도성장했다. 미쓰비시는 70년대 들어 중후장대에서 경박단소로 산업사회가 변해가면서 명성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엔고, 내수경기 확대 등과 신소재, 정보통신,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도시개발, 항공우주·군사 등 신규 산업과 중후장대의 부활로 미쓰비시는 다시 빛을 발한다.

미쓰비시그룹은 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은행, 미쓰비시 상사 등 29개사로 구성된 사장단 모임인 긴요회가 사령탑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2000년대 들어 기업의 폐쇄적인 경영 스타일이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미쓰비시는 2000년께 일본 내 소비자들에게 차량의 결함을 속였던 것을 숨기려 했던 사건으로 명예를 잃었다.

지난 2000년 여름 한꺼번에 80만대를 리콜해야 했고 2001년 초에 또다시 130만대를 추가로 리콜해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2000회계연도에만 당초 예상의 두 배 가까이 되는 22억달러(27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미쓰비시는 2003년까지 직원 14%인 9500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던 미쓰비시가 다시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쓰비시는 우주항공산업에서 공격적인 사업 진출을 통해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미쓰비시는 로켓을 비롯해 제트 여객기, 방사선 치료기 등 하이테크 제품을 잇따라 상용화해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일본 대기업의 경영시스템 변화

일련의 대기업뿐 아니라 일본 재벌의 경영 역사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미 일본의 대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존재했다. 일본 대기업은 미 군정의 재벌 해체 정책을 계기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2차대전 직전의 일본 재벌은 오너 가족이 과반수 지분을 가진 지주회사가 중심이었다. 지주회사는 산하에 은행 등 금융기관을 두고 활용하면서 대기업 계열사, 자회사, 손자회사로 이뤄지는 방대한 계열사를 피라미드식으로 지배했다.

미 군정이 재벌을 해체하기로 한 것은 일본 재벌이 침략 전쟁에 가담해 일본 제국주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재벌 해체 정책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면 수정됐다. 미국이 반공 기지로서 일본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기 때문. 그 결과 은행 및 상사를 중심으로 예전 재벌 계열 주요 회사들이 상호출자를 통해 기업집단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기업집단 구성 회사들은 서로 안정 주주 역할을 한다. 이는 단기적인 수익을 중시하는 주주들로부터 경영진을 보호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경영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지배구조는 크게 변했다. 기업집단의 경우 오너 가족이나 재벌 본사의 경영권이 소멸되고 개별 기업이 경영권을 갖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급격히 변화했다. 대표적인 기업집단으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후요, 산와, 다이이치칸긴 등이 있다.

이들은 은행, 증권, 상사, 경공업, 철강, 화학, 기계, 전기전자, 자동차, 유통, 물류, 부동산 등 거의 모든 산업에 진출하는 소위 ‘원 세트(one set)’ 구조를 형성했다. 이들 그룹은 미쓰비시그룹의 금요회(金曜會)와 같이 회원사 사장들로 구성된 사장단 회의를 개최하면서 상호협력을 모색해 왔다.

일본 경제가 1990년대의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기업집단 체제는 또다시 변화했다. 고도 경제성장이 마감되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집단의 결속력이 약화됐다. 특히 기업집단의 중심 세력이었던 거대 은행이 구조조정에 매진하면서 기업집단의 구조가 흔들리게 됐다.

예컨대 미쓰이그룹 계열의 미쓰이은행과 스미토모그룹의 스미토모은행이 합병했다. 산와은행은 미쓰비시은행에 흡수되고 후요그룹의 후지은행과 다이이치칸긴그룹의 다이이치은행이 통합됐다. 이로써 6대 기업집단 체제는 상당히 약화됐다.

결국 기업집단 체제가 약화된 일본 대기업은 2000년대 들어 성장보다 수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심지어 동일 기업집단 소속 기업이라도 실익이 없으면 협력을 하지 않는 경향도 보였다. 주주 이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무리한 계열사 지원을 거절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이 미국처럼 단기 수익 위주의 경영체제로 전면 이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의 비즈니스 관행은 장기적인 거래 관계 속에서 이익을 보장하는 관행이 강하다.


이렇게 기업집단 구조가 약화된 반면 독립된 대기업이 독자적으로 자회사와 하청회사를 거느리는 형태의 경영체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장기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종전 기업집단 체제의 일본식 경영은 자칫하면 조직의 관료화, 조직 구성원 편의주의에 빠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본 대기업들은 현재 중장기적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과 이익중심의 미국식 경영방식을 동시에 발휘하는 ‘제3의 경영스타일’로 지난 ‘10년간의 불황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hwyang@fnnews.com 양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