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세계는 에너지자원 전쟁중] 1부 <4> 유전 신대륙 ‘서캄차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6.04 10:12

수정 2014.11.07 02:40



2004년 9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노무현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전 대통령이 힘차게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관계를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냉전시대에 단절된 외교관계를 복원한 뒤에도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1994년 6월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기로 선언했지만 말뿐이었다. 동반자라고 하기에 러시아는 너무 멀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번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전처럼 말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 러시아에 선물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약속의 표시로 우리나라와 에너지 분야 등에서 7개의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자원의 보고’로 불리는 서캄차카 해상광구 개발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메이저 부럽지 않다…‘십시일반의 힘’

메이저 석유업체 관계자들은 “제대로 붙었다면 한국이 캄차카를 가져갈 수 없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메이저 석유회사가 없는 한국이 입찰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해외 유전을 개발하려면 대개 입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메이저 석유업체를 보유한 선진국과 경쟁해야 하고 자원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서 엄청난 금액을 써넣는 중국도 떨쳐내야 한다.

정상외교의 힘으로 서캄차카 해상광구 개발권을 얻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서캄차카 광구가 석유가 묻혀 있을 확률이 높은 곳이지만 석유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터지면 ‘대박’이지만 석유가 없다면 막대한 피해도 불 보듯 뻔했다.

메이저 석유회사라면 ‘나 홀로 돌진’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 실정상 한국석유공사 홀로 나서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야 했다. 2005년 4월 석유공사(40%)를 필두로 한국가스공사(10%), SK(10%), GS칼텍스(10%), 대우인터내셔널(10%), 현대종합상사(5%), 금호석유화학(5%)이 뭉쳤다. 이른바 한국컨소시엄이었다.

한국컨소시엄은 MOU 내용대로 서캄차카 사업의 지분 40%를 확보했다. 60%는 러시아 국영석유기업인 로즈네프트의 몫이었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같은 해 12월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됐고 2006년 12월에는 본계약이 이뤄졌다.

그러나 마지막 문제가 남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전개발 열풍이 불면서 시추선을 구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특히 서캄차카 해상은 오지여서 대부분 시추선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의 유일한 시추선인 두성호가 나섰다. ‘한국의,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을 위한’ 개발사업이 된 셈이다. 두성호는 대박의 꿈을 안고 이달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서캄차카 석유시추에 도전한다.

■기대 매장량만 37억배럴…‘엘도라도의 바다’

서캄차카 해상광구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서쪽 오호츠크해에 있다. 보급기지가 있는 항구도시 마가단에서 배로 24시간 정도 걸린다.

광구의 면적은 무려 6만2680㎢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3분의 2나 된다. 두성호가 24시간 근무체제로 쉴 새 없이 석유탐사 시추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곳의 추정매장량은 우리나라가 확보한 유전 중 최대 규모인 37억배럴. 우리나라가 1년에 들여오는 원유가 9억배럴 정도이니 예상대로만 석유가 나와도 4년 이상 쓸 수 있다.

2006년 6월 벌인 물리탐사에선 최대 매장량이 100억배럴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와 관계자들을 들뜨게 하고 있다. 석유공사 이재택 시추사무소장은 “확실한 결과는 아니다”면서도 “실제로 원유가 이만큼 나온다면 말 그대로 ‘잭팟’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서캄차카 사업은 단순한 원유 확보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사업이 로즈네프트와 함께 추진하는 것이어서 성과만 좋다면 앞으로 러시아와 자원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내놓을 다른 광구에서 경쟁국보다 우위에 선 채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에너지사업에서 중동 의존도를 낮출 중요한 전략적인 파트너가 바로 러시아”라면서 “서캄차카 사업은 앞으로 양국 관계에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탐사광구에서 메이저 회사가 석유를 캐낼 확률은 30∼40%. 그러나 두성호는 최근 몇 년간 가는 곳마다 석유를 시추하는 데 성공, ‘럭키리그’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성호가 애칭대로 서캄차카 광구를 ‘엘도라도의 바다’로 만들 수 있을지 여부는 광구의 원유·가스 매장량을 확인할 수 있는 8∼9월께 알 수 있다.

/star@fnnews.com 김한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