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통화청(MAS)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싱가포르에는 외국계 은행 107개를 포함해 은행 113개와 종합금융사 49개, 증권·선물회사 141개, 자산운용사 112개 등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명 관광지 센토사섬이 한 눈에 보이는 바닷가쪽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06년 10월 공사를 시작한 높이 245m의 ‘마리나베이 파이낸셜센터’(MBFC) 건설이 현장이다.
MBFC는 총공사비만 20억싱가포르달러(1조5000억원)가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각각 32층·46층짜리 사무용과 55층짜리 주거용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아시아 금융허브’ 싱가포르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데이비드 마틴 MBFC 총지배인은 “ABN암로와 바클레이즈 캐피탈, 도이체방크, UBS 등 글로벌 금융기업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영국 런던의 새로운 심장으로 불리는 ‘카나리워프타워’(Canary Wharf Tower)처럼 활력이 넘치는 싱가포르 금융의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노력이 기업을 부른다
외국 금융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앞다퉈 진출하는 것은 투자환경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1965년 독립 이후 금융인력 양성을 비롯한 강력한 금융산업 육성정책과 과감한 세제지원, 사회간접시설 확충 등에 매진해왔다. 지금은 많은 외국인 투자자 및 금융기관 종사자들로부터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가 됐다.
한 일본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선진화된 금융허브(financial hub)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곳은 싱가포르가 유일하다”면서 “5∼ 10년 전만 해도 홍콩이 금융허브로서 아시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곳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싱가포르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싱가포르 금융산업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 2004년만 해도 4.4%에 머물렀으나 2005년 7.1%, 2006년 10.6%에 이어 지난해에는 16.9%를 기록할 만큼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2007년 말 기준)도 12.3%나 된다.
금융산업에서 창출된 일자리 수도 2004년 6200개였던 것이 2005년 7700개, 2006년 1만1300개, 지난해 2만1900개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 금융기업들의 싱가포르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위한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은 때로는 지다치다 싶을 만큼 적극적이다. 금융감독기관인 MAS가 투기자본인 헤지펀드에 각종 영업관련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잠재적인 고객명단까지 넘겨준 일도 있다고 한다.
아울러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길 경우 초기 5년간 법인세 10%만 내도록 해주고 큰 문제가 없으면 추가로 5년간 10%를 적용하겠다는 ‘특별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올해 법인세율(최고세율)이 18%, 경쟁국인 홍콩이 16.5%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특혜’에 가깝다.
뿐만 아니다. 금융기업들이 밀집한 CBD에 사무실이 부족해지자 정부기관들이 먼저 팔을 걷고 나섰다. 싱가포르국토청(SLA)과 경제개발청(EDB)은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재정부와 국가개발부, 도시개발청(URA) 등은 공간활용을 극대화, 사무실 규모를 30% 가량 줄여 남는 공간을 민간기업에게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부동산업체인 쿠쉬맨&웨이크필드의 도널드 한 전무는 “정부기관들은 민간기업에 비해 최고 90% 높은 1인당 사무실 면적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정부기관의 사무공간 효율화 노력은 민간기업이 사무실 부족과 임대료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있는 곳에 기업이 있다
영국의 퀸마가렛대는 올해 초 싱가포르에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분교를 개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싱가포르에 영국 대학의 분교가 세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싱가포르에는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모두 16개 외국대학(대학원)의 분교가 만들어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금융 관련 인재를 배출한다. 미국 시카고대(2000년)를 비롯해 이태리 인시아드(INSEAD·2000년), 프랑스 에섹 비즈니스스쿨(Essec·2005년) 등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개설했다.
이같은 외국대학의 분교 설립은 '교육허브'라는 싱가포르의 또다른 목표 아래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물론, 많은 외국의 우수 학생들까지 모여들고 이것이 종국에는 싱가포르가 금융허브로서의 입지를 다지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도 지난 2000년 금융부문의 전문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미국 펜실베아대 와튼스쿨(MBA)과 손을 잡고 싱가포르경영대(SMU)를 설립한 바 있다.
실제 전문가들은 '금융허브' 싱가포르의 경쟁력 원천으로 전문인력이 풍부하다는 점을 제일 먼저 꼽는다. 싱가포르 금융기업의 전문인력 비율이 51.3%인데 비해 경쟁국인 홍콩은 43.8%, 우리나라는 8.9%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MAS는 지난 2000년 5억싱가포르달러(3850억원)의 금융발전기금(FSDF)을 마련, 전문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돈으로 금융기업이 직원들의 업무능력 개발을 위해 자체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 비용의 50%, 사외 연수프로그램에 파견할 경우 수업료의 50%,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보내는 경우 수업료와 항공료·체제비의 50%를 각각 지원한다.
이와 함께 '오케이 라'(OK la)로 대표되는 '싱글리시'(Singlish)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영어에 중국어가 가미된 싱글리시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조차 처음에는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의 공용화로 대다수 국민들이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싱가포르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해외진출의 가장 큰 장벽인 언어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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