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칼럼] 영화 ‘크로싱’과 자유의 가치/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파이낸셜뉴스

지금 북한 땅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활자 매체를 통한 보도, 탈북자들의 증언 그리고 이따금 목숨을 걸고 찍은 동영상을 통해 북한 사회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유로운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은 전체주의 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참담함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서울의 중심부로부터 불과 30여분을 달리면 ‘어떻게 저런 체제가 우리와 함께 지금 존립할 수 있을까’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의 견고하고 무지막지한 전체주의 체제가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 그런 체제가 가진 실상을 생생한 영상으로 전해줄 법도 하지만 그동안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은근히 북한 체제가 가진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고 동조하는 듯한 영화들이 꽤 많았지만 북한 체제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다룬 작품은 없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여러 번의 시사회를 거쳐서 막 시중에 상영되기 시작한 ‘크로싱’이란 영화는 용감하고 뜻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실제로 북한의 실상은 ‘크로싱’에서 묘사된 것보다 휠씬 심각한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크로싱을 보는 관객들은 누구든지 ‘어떻게 저런 이들이 문명국들이 즐비한 지구촌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어떻게 저런 일들이 우리가 피를 나눈 동포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영화 작품만으로 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좀 더 영화에 빠져들 수 있을 정도의 감동이 있었더라면 흥행에 더욱 크게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하지만 첫 숟가락에 배가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영화인들 가운데도 ‘이렇게 북한의 실상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시대적인 분위기 탓인지 몰라도 주연 배우를 맡은 사람도 한동안 영화 출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유대인들의 고난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에 필적할 그런 다큐멘터리성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엊그제 필자가 이 영화를 보러 갈 즈음에 금강산 관광객 한 명이 북한군의 정조준으로 인해 비명에 가고 말았다. 우리가 북한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돕고 그들의 자활을 돕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하지만 오랜 전체주의 체제 그것도 보통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해 온 북한의 집권층들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장하지 않은 관광객이 설령 특정 구역을 벗어났다고 가정하더라도 사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집권 초창기에 언급하였듯이 원칙에 따른 대북정책의 운영 방향이 근래에 별다른 설명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자국민이 사살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접한 상태에서 그런 사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하고 냉담한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북 유화정책을 대통령이 서둘러 발표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사안인가를 생각해 본다. 집권 이후에 거듭해 타이밍과 의제 설정에 실패하는 나라의 지도자를 걱정스럽게 보게 된다. 전체주의 체제를 다룸에 있어 우리는 반드시 뚜렷한 원칙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 역사를 볼 때 전체주의와 같은 악과 타협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지도자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악과 타협에선 늘 철두철미하게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악의 세력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으로 결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한국인이 이번에 선을 보이는 ‘크로싱’이란 영화를 봤으면 한다.

감동이란 면에서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의무감에서라도 보았으면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가치, 우리가 지켜야 할 체제, 그리고 우리가 더 열심히 자신과 나라의 앞날을 개척하기 위해 헌신해야 할 이유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