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한민국 60년,우리 생활을 바꾼 발명품] 자동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8.12 16:35

수정 2014.11.06 06:28

1955년 10월 서울 창경궁에서 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이 박람회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립자동차인 ‘시발자동차’가 출품됐다. 그때만 해도 자동차라는 것을 많이 보지 못했던 터라 그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재생차였지만 ‘시발’ 차는 우리 자동차공업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식 자동차 생산라인을 통해 만들어진 차는 ‘새나라’다.



새나라는 조립생산이기는 했지만 현대식 공장에서 나온 최초의 승용차다.

이어 일본업체와 제휴를 통해 코로나와 크라운 등의 차가 선보였다.

시간이 흘러 1974년 10월. 기아자동차에서 브리사를 내놓았다. 브리사는 지금의 모닝과 같은 존재.

오일쇼크로 전 세계 경제가 주춤하자 정부는 국민차 생산계획을 세웠고 기아차가 정부의 기대에 부응했다.

브리사는 배기량 1000㏄로 1975년에는 1만대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통했다.

1981년 정부의 2·28조치로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모두 7만대가 팔린 베스트셀링카다.

1976년은 한국 자동차역사상 뜻깊은 해다.

현대차가 76년 2월 포니를 첫 출고하면서 대한민국에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포니는 판매 첫해 1만726대가 판매됐으며 같은 해 에콰도르에 수출(5대)까지 됐다.

포니는 1984년 단일 차종으로는 처음으로 ‘50만대 생산’이라는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중형차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쏘나타가 등장하기까지 한국에서는 제미니와 맵시, 스텔라, 로얄 등이 사랑을 받았다.

서울 88올림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현대차는 ‘Y2’카라는 신차를 내놓는다. 바로 쏘나타다.

쏘나타는 현재의 현대자동차를 있게 한 장본인이며 한국 차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1.8ℓ와 2.0ℓ 시리우스 엔진을 얹은 쏘나타는 둥근 차체와 편한 운전 등을 장점으로 내세워 출시와 함께 곧바로 중형차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았다.

쏘나타는 93년 쏘나타II, 96년 쏘나타Ⅲ, 98년 EF쏘나타, 2004년 NF쏘나타, 2007년 쏘나타 트랜스폼 등으로 변모하면서 현대차와 20년을 동고동락했다. 내년 7∼9월에는 새로운 쏘나타(프로젝트명 YF)가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차도 있다.

2000년 6월 첫선을 보인 싼타페는 가족 중심의 레저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출생한 한국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다.

1623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 개발된 싼타페는 세단 중심의 한국 자동차 문화를 바꿔 놓았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 한국의 자동차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차도 올 초 선보였다.

한국 최초의 프리미엄 세단인 제네시스가 바로 그 주인공.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독자개발한 V형 8기통 타우엔진 등 최첨단 장치가 장착된 말 그대로 프리미엄 세단이다.

최대출력 340마력인 타우엔진은 정지상태에서 불과 6초 만에 시속 100㎞를 돌파하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고급 수입차와 견줘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네시스는 말 그대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재이자 미래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자동차 조립생산을 시작한 지 무려 36년이 1991년에야 자체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다.

자동차의 핵심 기술인 엔진 개발은 지난 8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은 “차를 만들어온 지 20년이 다 돼가는데 어떻게 우리 엔진이 없냐, 언제까지 남의 엔진만 들어와서 쓸 거냐”고 엔진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83년 9월 현대차에 ‘엔진개발실’이 신설된다.

엔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터라 기술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랐다.

엔진틀을 만들기 위한 주조에서부터 난관을 겪었고 국내 부품업체들의 인식 및 기술 부족, 외국 부품업체들의 무시로 수모를 당하기 일쑤였다.

현대차는 엔진개발에 착수하면서 영국 리카르도사와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하고 5명의 인원을 파견, 기초지식 습득부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85년 9월 ‘시제품 1호(알파엔진)’가 나오게 된다.

연구실에서 수십명이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기원하며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까지 지냈다는 후문.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86년 8월부터 내수성 시험이 시작됐는데 1주일 주기로 엔진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깨진 엔진만 20여대. 문제는 냉각계통 이상으로 밝혀졌다.

알파엔진은 지구 105바퀴에 해당하는 420만㎞의 성능시험과 기온테스트, 고지대 테스트 등을 거쳐 91년 ‘출생신고’를 하게 됐다.

해방과 건국을 거쳐 우리 기술로 만든 자동차 엔진이 나오기까지 무려 4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fncho@fnnews.com 조영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