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운동 혹은 가까운 미래는 기계론적 사고로 예측
전통적인 서구의 철학이 그러하듯이 서구 과학의 문제는 사물을 분석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를 국소주의라고 부르는데 가령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생체를 여러 가지 요소로 분해하고 이것들마저 다시 작은 단위들로 쪼개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한의 단위들을 찾아서 연구한다는 것이다.
가령 생명 현상을 다룰 때 생화학적 반응들을 매개하는 효소들이 전체 생명 현상에 서로 독립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효소 연구로부터 얻어진 지식의 산술적인 합으로부터 생명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기계론적 생명관이라고 한다. 과학계들의 이러한 입장은 서양 의학이 수백 가지 전문 분야로 세분화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수학의 법칙들이 실재에 관해 언급하는 한 그것은 확실하지 않고 그것들이 확실하다면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수학자 라플라스와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면 라플라스는 “어떤 주어진 순간에 자연에서 작용하고 있는 모든 힘을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 지성은, 만일 이 지성이 이러한 자료를 분석할 수 있다면 가장 거대한 것들과 가장 미세한 원자들의 운동을 똑같은 공식으로 파악할 것이다.
즉 그것에는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미래도 과거와 같이 그 눈앞에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데카르트는 그의 저서 ‘방법서설’ 제5부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특별한 정신적 자각 없이 몸을 구성하는 각 기관의 장치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 즉 언어를 사용하여 복잡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물질로만 구성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고 보았는데 이렇게 물질과 마음을 철저히 독립적인 것으로 구분한 이원론은 근대 과학과 의학의 탄생을 이끌었다.
복잡한 운동 혹은 가깝지 않은 미래의 예측에는 전혀 새로운 사상이 필요
인체이든 지구이든 그 내부를 구성하는 단위체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유기적 관계성을 보이는데 원인이 결과가 되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그물망에 비유될 수 있다.
동양사상 특히 불교의 연기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사물이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 위에 있으며 따라서 서로 독립적일 수 없음을 가르친다. 그물 위에서는 그 어떠한 변화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주변이나 중심을 논할 근거도 필요 없다.
따라서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머리가 신체의 중심이 아니며 먼저 있던 것도 나중에 있던 것도 없으며 보다 가치 있는 것도 하찮은 미물도 없게 된다.
이러한 병렬적 그물망을 시스템이라고 불러보자.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은 구성요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체의 특성으로서 이 특성은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연관성으로부터 저절로 창발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시스템이 분리되어 개별 요소로 환원되면 이러한 특성은 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시스템으로서 생태계와 생명 현상이 있다. 이때 시스템을 통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신비한 요소가 창발된다는 이론을 가리켜 시스템적 생명관이라고 부른다.
사례를 들어 보자. 뜨거운 열기의 축구장에서 볼 수 있는 파도타기를 생각해 보자. 지휘자가 없어도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파도타기에 전념한다. 이러한 모습은 인터넷에서도 관찰되는데 관련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인터넷 망에 접속한 사람들이 시시각각 어떤 주제에 집중하면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간다.
또 사람의 의식은 어떠한가? 모든 뇌세포가 자신의 역할과 기억을 갖고 있고 어느 뇌세포도 다른 뇌세포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우리는 항상 어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 많은 뇌세포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일까? 벌레와 덩치 큰 동물의 세계에서도 수가 많으면 보다 지능적인 행동을 보인다. 많은 수와 그들 간의 연결망과 개체로부터 예상할 수 없는 형질이 나타난다. 이것이 창발이다.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이 분야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생태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조직이다. 만일 우리가 미래에도 잘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딩>
―“만일 인간이 그 자신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거미줄 같은 연결망에서 중요한 매듭을 구성하는 유기체를 별 생각 없이 제거해 버린다면 인간은 궁극에 가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하고 말 것이다.”<두보스>
따라서 생태계가 살아 있는 시스템의 하나라면 창발에 의한 효과를 고려하여 분석이라는 방법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부분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 본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전체라는 맥락 속에서만 부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출문제를 풀어보자. 상지대 2008학년도 수시1 한의예과 논술 A유형 문제인데 논제는 “두 제시문은 과학적 이론이 정립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 진리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하시오.”이다.
과학적 진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진리의 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보는 진리는 참된 지식을 의미한다. 참되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객관적이라고 말한다.
즉 객관적인 사실은 보편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어떤 사실이 객관적일 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검증을 통해 지식의 지위에 오른 사실들이라 생각하기로 하자.
문제는 어떻게 검증될 것인가이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들은 어떻게 검증되어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 일반화에 도달하는 방법은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연역적인 방법과 귀납적인 방법이 그것이다. 흔히 수학자들에 의해 연역적인 검증이, 과학자들에 의해 귀납적인 검증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물론 두 방법 모두 현대 과학문명의 기초를 세우고 문명을 이끌어 가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적 진리란 ‘연역적 또는 귀납적 방법에 의해 철저히 검증된 그래서 보편적 지위를 얻게 된 사실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제부터 연역적인 증명과 귀납적인 증명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수학적 귀납법은 좋은 사례이다. 이 증명법은 수학에서 널리 쓰이는데 증명하고자 하는 명제가 미리 결정되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증명이 이루어지지도 전에 어떻게 증명해야 할 결론이 미리 얻어진 것일까? 답은 여러분의 머리에 있다. 인간의 상징적, 추론적,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 통찰적 사고로부터 자연스럽게 그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개구리와 가오리의 신체로부터 오각형의 구조를 발견한 뒤 오각형의 신체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추론한다거나 화학에서 배우는 분자운동론의 가정으로부터 운동에너지의 크기가 온도의 함수가 될 것이라고 유도하는 것에서 연역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반면 귀납적인 증명 방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자연현상을 하나씩 관찰하여 사례를 수집한다는 의미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과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실험 결과로부터 논거를 하나씩 쌓아 간다는 의미이다.
과학적 진리를 위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성적이지 못한 현상 혹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현상은 지식의 체계 안으로 포함될 수 없는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현상이 연역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실험할 수 없는 현상은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실험에서 관찰이 된 현상이라고 할지라도 항상 재현 가능하지 않은 현상은 지식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갖는 의미는 명료하다. 과학적 진리는 전체 진리의 일부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적이라서 불변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베게너를 다루는 제시문1은 과학적 진리의 ‘증명 가능해야’ 한다는 선언이 오히려 진리의 발견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동양 의학을 포함한 대체의학이 서양 정통의학에 의해 받는 차별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국소주의를 추구하는 서양 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전일주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소위 과학적 사고로서 대별되는 서구 과학의 방법으로는 그 완전성을 증명할 수 없다. 이는 기준과 잣대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제시문2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행성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즉 그 동안 누적된 명왕성에 대한 관찰 자료에 근거하여 과거의 판단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과거의 과학이 불완전한 근거로 판단을 내렸듯이 현재의 과학도 내재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 논리인데, 어떤 지식이 불완전할 수 있는가의 합의가 실질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가령 생명에 대한 기계론적 사고는 분석이나 이해,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분명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술적 사고만으로도 생명 현상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또한 인간의 의식, 뇌를 다루는 학문이 도약의 길로 나아가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지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향적 자세는 사실 여부를 떠나 전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더 나아가 현대의 생기론이 너무나 복잡해서 과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높여 준다면 손해될 것이 무엇일까?
※본 코너를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아래 기출문제가 필요하며 이는 해당 대학 입시 관련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상지대 2008 수시1 한의예과 문제
―백광현, ㈜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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