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중국의 역사적 한계/김동률 KDI 연구위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9.07 19:35

수정 2014.11.06 02:12

미국에서 대도시간 가장 편리하고 경제적인 이동수단은 항공편도, 자동차도, 암트랙으로 불리는 열차편도 아니다. 정답은 차이나타운에 가서 푹신한 전세버스에 몸을 맡기면 된다.

실제로 뉴욕에서 워싱턴에 오갈 때 가장 인기 있는 교통수단은 중국인 밀집지역을 오가는 이름하여 ‘차이나타운 고속버스’다.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시카고 등등 웬만한 도시는 물론이고 캐나다 주요 도시까지 연결돼 있어 편리하기 그지 없다. 경비 또한 다른 교통수단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저렴하다. 차이나타운이 그만큼 미 전역에 폭넓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구세대에게는 백설희가 부른 흘러간 노래 제목으로, 신세대에게는 기름진 중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동네쯤으로 인식하기에는 지독하게도 슬프고 잔혹한 역사가 있다. 남북전쟁 전후 미국 경제발전의 절대적인 원동력은 철도였다. 그래서 이 시기를 철도의 시대라고 부른다.

철도 시대는 1862년 남북전쟁 중 유니언 퍼시픽과 센트럴 퍼시픽이 대륙 횡단철도 건설을 시도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로키산맥을 뚫는 것은 당시 토목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사람 손으로 하다 보니 인부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죽어 실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서너 명의 인부 구하기가 빈대 서말 모으기보다 어렵던 시대, 그러나 이 같은 난공사를 가능케 한 것은 중국인들이었다. 몰락해 가는 왕조를 등지고 신대륙에 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육체노동, 쿠리로 불리는 수만 명의 중국인들이 폭발사고로, 아니면 백인 감독들의 채찍질에 죽어 나갔다. 그래서 철도 침목 하나에 한 명의 쿠리가 깔려 있다는 슬픈 말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더욱 우울한 사실은 정작 준공식 때에는 단 한 명의 쿠리도 초대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전원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홍콩배우 성룡이 등장하는 ‘상하이 눈’ ‘상하이 나이츠’를 본 사람은 백인들의 학대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중국인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겠다.

공사가 끝난 뒤 잔류 중국인들의 불만이 심상치 않자 미국 연방정부가 보상하는 차원에서 최소한의 자치권을 부여하면서 내놓은 작품이 바로 오늘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차이나타운이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인들의 슬픔과 분노가 녹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이 어떤 나라인가. 중국인은 예로부터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자 유일한 문명국가로 자신들의 황제가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어왔다. 2000년 전 진나라가 대륙을 통일한 그날부터 중국은 주변국들과 대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자발적인 복속과 굴종이 아니면 창칼을 앞세운 무력 정복을 통해 자신들의 발 밑에 꿇게 해 왔다. 이것이 중화주의의 요체다.

그러나 1842년 아편전쟁에 져 홍콩을 영국에 넘긴 순간부터 1945년 2차대전이 끝나 일본이 물러가는 그 순간까지 중국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치욕의 역사를 겪게 된다. 특히 그동안 존재감조차 인정치 않았던 조그만 섬나라 일본에 무릎을 꿇은 사실에 절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부르르 떤다. 그런 중국인에게 상처 입은 지난 이백년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시대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분했으면 “칼날의 빛을 애써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되새기며 절치부심해 왔을까.

그래서 올림픽을 위해 100년을 기다렸고 7년을 준비했다는 중국 정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고 올림픽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한발 더 나아가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추억과 열망을 되새기는 대목에서, 니오차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천지를 진동하는 북소리에서, 한나라와 당나라에 사라져간 고조선, 고구려, 백제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들만큼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상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과도한 중심국가론 주장은 유라시아 반도의 조그만 나라 한반도 이웃국민에게 또 다른 상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은 모르고 있다.

중국의 한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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