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두 비엔날레가 동시에 개막돼 청명한 가을 하늘을 형형색색의 미술 작품으로 수놓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를 지향하며 달려온 제7회 광주비엔날레와 부산청년비엔날레로 시작된 자생적 지역 미술축제를 비엔날레로 성장시켜온 제5회 부산비엔날레. 이제 비엔날레는 세계 80여 곳에서 열리는 탓에 특색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아니 너무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기 때문에 비엔날레를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꾼들(전시감독과 큐레이터)로 인해 특색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제를 없앰으로써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겠다는 광주비엔날레(9월 5일∼11월 9일)와 비엔날레의 특징인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보여주겠다는 부산비엔날레(9월 6일∼11월 15일)의 세계로 떠나보자.
■외국인 감독 Vs 국내 감독
먼저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처음으로 외국인 오쿠이 엔위저(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학장)를 예술총감독으로 임명했다. 오쿠이 감독은 신정아 사건으로 준비 기간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례보고:일년 동안의 전시’라는 제목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일단 성공했다.
엔위저는 독일 카셀도큐멘타11(1998∼2002)과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1996∼2998)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제7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제3세계의 탈식민화와 소외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유럽에서 이 이슈는 분명히 성공적이었지만 광주에서는 다소 낯설다는 게 미술계의 시각이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엔위저 감독의 취향과 역량 때문에 한스 하케나 고든 마타-클락과 같은 A급 작가들은 드물고 제3세계 작가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우리의 관심사와 동떨어진 작품들이 많다”며 “비엔날레의 역동성이나 실험성이 다소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07년과 2008년 사이 어느 곳에선가 전시되었던 최근의 전시들에 대한 보고서인 ‘길 위에서’는 시간과 장소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정돈된 구성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특별한 주제 없이 최근의 주요 전시를 모아 보여주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셈이다.
반면에 부산비엔날레는 홍익대 미대 학장인 이두식 교수를 운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두식 위원장은 “점점 경계가 흐릿해지는 아트페어와의 차별화를 위해 비엔날레의 특성을 살린 실험성 높은 작업들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시를 제외한 전반적인 운영에만 참여하고 전시 구성은 김원방(홍익대 교수), 전승보(독립큐레이터), 이정형(조각가) 등 전시감독 세명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김원방 전시감독은 전시 주제이기도 한 ‘낭비’를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으로 해석하고 현대미술의 ‘낭비’적 측면을 다양하게 조명했다. 특히 현대 사회의 특징이기도 한 과도한 권력을 비꼬며 항상 지나침에 대해 경고하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또 ‘비시간성의 항해’를 주제로 잡은 전승보 전시감독은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를 배경으로 유쾌한 항해를 펼치고 있으며 이정형 전시감독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나루공원에 ‘전위적 정원’을 주제로 부산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 환경 친화적인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고비용 저효율 전시 Vs 저비용 고효율 전시
광주비엔날레의 예산은 82억원. 당초 예산 110억원에서 28억원이 삭감돼 예산의 3분의 1인 24억원이 전시에 투입됐다. 광주비엔날레가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장점도 많지만 과도한 인건비로 전시 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불평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전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셈이다.
부산비엔날레는 40억원의 예산 가운데 3분의 2인 24억원을 전시에 투입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전시를 이끌어냈다. 앞으로는 개선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 외국 작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안정성 Vs 실험성
광주비엔날레의 특징은 특별한 주제를 정하지 않은 점이다. 엔위저 감독의 말대로 다양한 현대미술을 포괄하기에는 특별한 주제를 정하는 게 오히려 생뚱맞다고 할 수도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특별한 주제를 정하는 대신에 ‘길 위에서’ ‘제안’ ‘끼워넣기’라는 세 개의 상호연관적인 구성요소들로 기획함으로써 실험성보다는 안정성을 택했다.
이에 비해 부산비엔날레는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의 사상에서 빌려온 ‘낭비’라는 개념을 통해 탈젠더, 탈범주화, 에로티시즘, 재현적 질서의 해체, 주변과 중심의 대립적 구도의 해체 등 실험성 짙은 현대미술을 소화해 내고 있다.
■풍성한 볼거리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5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광주비엔날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요하힘 숀벨트가 박제된 공작·독수리·암사자·소를 역피라미드 형태로 세운 뒤 그 앞에서 음악 연주가 이뤄지도록 한 작품 ‘4명의 음악가’를 비롯해 하얀 천이 바닥 위에서 물결 치듯 움직이는 한스 하케의 설치작품 ‘넓고 하얀 흐름’, 고든 마타-클락(1943∼1978)의 ‘아나키텍처’(건물 자르기) 등이 볼거리다. 다소 외국어를 이해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특징이기도 한 각종 영상물도 천천히 감상한다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나 베르너 파스빈더의 역작인 15시간 짜리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광주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비엔날레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설치·영상물의 보완재로 회화를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과 중국과 대만의 현대미술 원로 작가들을 초청한 ‘미술은 살아있다展’(19일까지 부산시청 전시실)과 청년 작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세계를 선보인 ‘미술은 지금이다展’(20일까지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이 그것이다.
현대미술전은 일본 니시오 야스유키(39)의 대형 조각인 ‘쾅, 세일러 마스’, 예수를 무릎 위에 놓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과 철 조각으로 표현한 이용백(42)의 조각 ‘피에타’,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야한 이미지 때문에 별도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공간에 전시된 브루스 라브루스(44·캐나다)의 사진이 전시된다.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과 민락동 미월드 놀이공원 내 건물의 예식장과 스포츠센터 등 빈 공간을 활용해 연 ‘바다미술제’는 훨씬 더 실험적인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자가 성형수술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는 프랑스 행위 예술가 올랭(61·프랑스)의 영상과 사진, 베이비 파우더로 도시 모습을 만든 니판 오라니웨스나(46·태국)의 설치물,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 속으로 증발하는 나프탈렌으로 작업하는 미야나기 아이코(31)의 조형물, 김미애의 ‘유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