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속도=돈’ 안 통한다/김주식 문화레저부장

김주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06 16:54

수정 2014.11.05 12:01



불현듯 단골 칼국수집에서 곱씹어본 얘기다. 여기 한 지붕 아래 두 칼국수 집이 있다. 내로라는 식도락가들로 북적거리는 장안에 소문난 맛집이다. 해서 맛 경쟁이 여간 아니다. 점심 때면 꼬리를 물고 늘어선 대오가 행여 이탈할세라 장외 신경전까지 벌이기 일쑤다. 두 맛집은 고민 끝에 저마다 식탁 회전율을 높일 묘책을 마련했다.


한 집은 종업원 두 명을 새로 채용하는 경영 변신을 꾀했다. 최근 며느리가 대물림한 또다른 집은 반죽된 밀가루를 즉석에서 칼질해 국수를 삶아내던 ‘할머니표’ 요리 비책을 접고 전날 준비해둔 국수를 뭉뚱그려 대량 끓여내는 ‘며느리표’ 방식을 단행했다. 과연 어느 쪽이 경제적인 묘안일까. 기자가 보기엔 두 맛집 모두 글렀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돈에 동물 본능이 동하는 상술 법칙을 놓고 보면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규모, 종업원 수, 주방시설 등 생산요소간 하모니를 곰곰이 따져보면 그게 아니다. 두 맛집 상술에 유난히 천착되는 건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국내 경제상황과 묘하게도 닮은꼴이어서다.

첫 집을 들여다보자. 종업원 수가 늘어나자 주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더 많은 식탁을 치울 수 있게 됐다. 하루 판매액은 그러나 며칠이 지나서도 종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연방 주판알을 튀기던 주인은 그 연유를 몰라 몇 번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달라진 게 있다면 문 밖에서 기다리던 손님이 다소 줄어든 대신 식탁에 앉아 꼴깍 군침을 삼키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손님이 늘어났다는 사실. 되레 두 명의 인건비만 축낸 꼴이 됐다. 조리시설 추가를 간과한 탓이다. 또 음식점 공간을 무한정 넓힌들 공회전만 하는 식탁 손님만 더욱 늘어날 뿐이다. 말하자면 신규 조리시설 구축 없인 요리 가동률에 날개를 달 수 없다.

모양새가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진 중소기업의 현주소와 흡사하다. 중소 제조업체들의 생산설비 가동률이 지난 4월 이후 계속 하락해 8월에는 70% 가까이 추락했다. 국내 총 근로자 중 물경 88%가 중소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니 국내 제조업의 기반 약화와 함께 실업 대란이 우려된다. 중소기업들이 저마다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 특화된 연구개발(R&D)이 시급한 까닭이다.

며느리가 대물림한 칼국수집을 들여다보자. 이 집의 특허는 할머니의 손맛이었다. 며느리는 그러나 ‘속도=돈’이라는 등식을 앞세워 금과옥조와도 같은 할머니의 노하우를 깼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수가 퉁퉁 불어나기 일쑤다. 곧장 무쳐 내 침샘을 자극했던 할머니표 겉절이는 주문 김치로 대체했다니 십수년 단골들이 입맛을 쩝쩝 다실 터다.

며느리표 칼국수집은 공급 과잉의 덫에 걸린 부동산시장에 진배 없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태동한 주택공급 확대정책이 빚어낸 모순과 닮은꼴이다. 경기 부양에는 주택 건설만한 특효약이 없다. 땅 위에 판박이처럼 찍어내기만 하면 프리미엄이 붙었다. 정부와 건설업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재미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경제 조류를 읽지 못한 채 마구잡이식 건설에 속도를 낸 게 문제였다. 청약미달 사태에 미분양아파트가 20만가구에 육박한다니 대단위 신도시 하나를 세우고도 남는다. 핵가족화, 고령화, 나홀로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부동산은 이제 양보다 선택의 폭을 넓힌 질이 관건이라는 역설이다.

악재의 톱니바퀴는 예서 멎지 않았다. 어느 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구축된 다국적 칼국수집들이 속속 늘어났다. 그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얼마 후 판도라 상자로 판명났다. 빚을 갖가지 금융공법으로 상품화해 뻥 튀긴 게 화근이었다. 끝간 데 없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부채로 덩치를 키운 부동산 버블은 끝내 붕괴됐다. 다국적 칼국수집들은 급기야 화염에 휩싸였고 자산가치는 맥없이 추락하고야 말았다.

한국산 칼국수집도 업습해 오는 요원의 불길이 동공에 맺힌 형국이다.
널뛰는 환율에 살인적인 유가 그리고 금융 재앙에 매출이 영 시답잖다. 내수 위축과 자금 경색으로 실물경제가 아우성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반면교사로 삼아 10년간 담금질한 경제 내공의 위력을 발휘할 때다.

/joosi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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