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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의 덫’에 빠진 통신시장] ① 재주는 통신사가,돈은 판매점이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06 17:57

수정 2014.11.05 12:00



국내 통신시장이 고비용 유통구조로 멍들어가고 있다. 가뜩이나 가입자 포화와 요금인하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복잡한 유통단계와 허술한 번호이동제도 같은 유통구조 때문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유통과정에서 새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소비자와 통신사업자가 모두 손해를 보고 있어 업계의 유통구조 개선과 함께 정부차원의 제도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일부 유통판매점들이 월 수백명 이상 가입자를 마음대로 가입시키고 빼가면서 수수료만 챙기고 있습니다. 이런 악의적 사례가 많다보니 유통수수료 누수문제가 통신업계의 고질병이 되고 있습니다.”

한 통신업체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동전화 4500만, 초고속인터넷 1500만 가입자를 돌파해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에서 유통판매점들이 통신회사의 모집 수수료만 빼먹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중 수수료 빼먹는 유통점 늘어

초고속인터넷 회사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모집 실적이 좋은 유통판매점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한다.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수수료가 가입자 1인당 최고 25만원에 달한다.

수수료 수입이 워낙 짭짤하다보니 유통점들이 수수료 빼먹기 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유통판매점이 가입자 1000명을 모아 KT에 가입시키고 수수료를 받은 다음 3개월 뒤 가입자들에게 위약금을 포함해 17만원 정도 현금을 보상해 주고 다른 회사로 옮길 것을 권유한다. 통신사 변경을 결심한 가입자를 모아 SK브로드밴드나 LG파워콤에 넘겨주면서 다시 가입자 당 25만원의 수수료를 받아 이중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악용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통신회사들은 서비스에 따른 수익은 고사하고 가입자 모집에 들인 수수료조차 회수하지 못한 채 유통점들의 장난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동전화 번호이동 악용 올해만 244만명 달해

이동통신 3사가 조사했더니 올 들어 8월 말 현재 번호이동 이후 1년도 안돼 다시 서비스를 해지한 가입자가 244만명에 달했다. 전체 번호이동 가입자의 17%에 달하는 숫자다. 일반적인 번호이동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이 18∼24개월인데 1년 안에 해지하는 고객이라면 판매점들이 부정한 목적으로 가입자를 빼돌렸다고 봐야 한다는 게 이동통신회사들의 판단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3개월마다 번호이동을 하면서 새 휴대폰을 받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바로 인터넷 장터에서 되파는 일명 ‘폰테크’수법도 버젓이 나돌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 3사는 올 상반기에 3조4000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었는데 가입자 숫자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결국 가입자를 지키기 위해 유통판매점들의 장난을 막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인 셈”이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통신사 바꾸기 너무 쉬워 악성 유통점 우후죽순

유통점들이 ‘수수료 블랙홀’이 되는 원인은 이들이 통신 가입자를 빼돌리면서 통신회사 바꾸는 절차가 너무 쉽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번호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절차가 간단하다. 판매점을 통하든 온라인 상으로든 실시간 번호이동을 할 수 있다. 초고속인터넷도 신청서 한 장만 쓰면 통신회사를 바꿀 수 있다. 통신회사 변경이 쉬워 수수료 수입 올리기가 쉽다보니 가입자는 포화상태에 달했는데도 통신 유통점들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식 계약점들이 아니어서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이동통신 판매점은 2004년 번호이동제 도입 이전 7000여개였던 것이 올 상반기에는 2만5000여개로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집계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영업점은 소규모 텔레마케팅 업체까지 합쳐 족히 2000여개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서비스 회사를 바꿀 때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유통업체들의 장난에 통신업체들이 모두 병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유통구조”라며 유통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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