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외국인 노동자 “빨리 돈 보내자”..편법송금 급증

김명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09 20:49

수정 2014.11.05 11:37



“외국인 노동자들은 은행 대신 서울 대림시장과 가리봉시장의 사설 환전상을 찾아요.”

9일 하나은행 구로동지점 김순연 행원은 “한 번에 100만원에서 200만원씩 송금하던 외국인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동포 전담팀의 김 행원은 “외국인들은 송금 수수료 때문에 두 달 내지 석 달치 봉급을 한꺼번에 모아서 보낸다”면서 “그러나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본국으로 외화를 송금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설 환전상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서 1400원을 넘나들던 9일.

가리봉시장 외국인 불법 환전상의 계산기는 불이 나게 바빠졌다. 원화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은행 대신 외환브로커를 통해 외화를 본국으로 대거 송금하고 있는 탓이다. 불법 환전상을 통한 외국인 근로자들의 외화 송금 규모가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달러 구하기에 초비상이 걸린 국내 외환시장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의 노광윤 차장은 “지난 2005년 필리핀 등 6개국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불법 환전상을 이용하는 비율이 20∼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최근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오히려 이들 환전상을 통한 송금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들도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 여파로 달러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이들 외국인의 달러 환전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은 모두 25만3549명. 이들 불법 체류자들이 한 달 평균 봉급인 150만원 중 3분의 2인 100만원을 해외로 송금하는 것으로 추산돼 한달새 1800만달러(약 253억원) 규모가 불법 환전상을 통해 빠져나가는 셈이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및 외국인 근로자 100만명까지 감안하면 송금액은 대략 10억달러를 웃돌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외국인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은행 이용이 더 힘들어졌다. 최근 자금세탁방지법 개정 등이 통과되면서 이들 외국인 금융거래에 대한 신분 검증 요건이 강화되는 바람에 계좌 하나를 개설하려고 해도 여권은 물론이고 재직증명서나 국내거주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울 수표동의 한 환전상은 “불법 체류자로 보이는 파키스탄인이나 인도 사람들은 한 번에 500만원씩 달러로 바꿔가곤 한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노 차장은 “최근과 같은 환율 급등락 시기에 제도권이 아닌 불법 브로커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릴 경우 외화가 부족한 국내 시장에 외화 가뭄을 가중시킬 것”이라면서 “특히 정확한 외환 거래 규모 파악이 힘들어 외환 관리에도 적잖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최근 외화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자 환전상에서의 외화는 부르는 게 값이다. 9일 현재 서울 수표동 환전상에서 100위안은 2만1000원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다.

환전상을 찾은 중국인 왕유(22)는 “지난 주말에만 해도 18만원이면 1000위안으로 바꿀 수 있었는데 오늘은 19만5000원을 불러도 가능하다는 외환상이 없다”고 걱정했다.


외화를 팔려는 사람도 자취를 감췄다. 달러 매도 문의는 늘었지만 앞으로 더 오를 것을 생각해 실제 환전하는 사람들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


해외 여행 후 남은 달러를 바꾸려고 환전상을 찾았다는 주부 김모씨(42)는 “뉴스에서도 환율이 앞으로 몇 주간 더 오를 것이라고 해서 좀 더 두고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mjkim@fnnews.com 김명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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