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성과주의 자원외교 뒤탈/김홍재 정치경제부 차장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0 18:02

수정 2014.11.05 11:32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았던 지난 5월14일 카자흐스탄을 방문중인 한승수 국무총리가 4년간 끌어오던 잠빌광구 계약을 극적으로 체결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주요 뉴스로 타전됐다.

잠빌 광구의 원유 추정매장량이 10억 배럴로 1년간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량이 8억9000만 배럴인 점을 감안할 때 광구 지분 27%를 확보한 계약은 한 총리의 중앙아시아 최대 자원 성과로 꼽힐만 했다.

특히 정부는 카자흐스탄 측에서 고유가를 이유로 3억∼5억 달러 이상을 요구했지만 한 총리가 당초 합의금액 보다 1000만 달러 정도 많은 8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며 자원 외교의 성과로 자평했다.

하지만 이 계약에는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추가 계약이 있었던 사실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한나라당 이학재 의원은 지난 7일 석유공사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잠빌 광구 계약과 관련해 계약체결 대가로 8500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10배나 많은 8억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관련 근거로 석유공사의 이사회 회의록까지 제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당시 정부와 석유공사는 석유가 발견되면 카자스탄 측에 8500만 달러외에 추가로 최대 8억10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내용의 또 다른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 계약서는 잠빌 광구에서 석유가 발견될 경우 매장량의 일정 비율을 발견 당시 국제 유가에 따라 지급하는 ‘발견 보너스’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 의원이 제시한 회의록에도 참석자들이 이 계약에 대해 ‘퍼주기’라는 표현을 써가며 우려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결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잠빌 광구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카자흐스탄 측의 무리한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협상을 잘해서 적은 비용으로 유망 광구를 확보했다며 실리 없는 성과 내세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셈이다.

이같은 정부의 성과주의 자원외교는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정부와 석유공사가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체결한 8개 탐사 광구에 대한 광권계약과 사회간접시설(SOC) 건설 지원을 연계한 최종 계약도 난항이 예상된다.

당초 이 계약은 21억 달러의 SOC 건설 계약 중에서 19억 달러를 7개 컨소시엄 참여 업체가 부담하게 되자 업체들이 컨소시엄 참여를 꺼리면서 실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시 21억 달러의 SOC 사업 가운데 6억 달러의 사업을 먼저 시행키로 하고 이중 4억 달러를 새로운 컨소시엄 참여 업체에 부담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석유공사와 컨소시엄이 분리돼 있어 참여업체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은데다 건설 업체들이 거금을 끌어모을만한 담보가 부족하고 이라크의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업체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석유공사는 이번에도 컨소시엄 구성에 실패하면 단독으로라도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떻게 마련할지 의문이다.

또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러시아 서캄차가 유전개발 사업도 라이센스 연장 실패로 손실액이 34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0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지불된 2억1000만 달러 중 60%(1억2700만 달러)는 당초 러시아가 부담키로 했으나 석유공사가 대납해 손해를 그대로 떠안게 됐으며, 라이센스 연장 실패에 따른 각종 용역사에 대한 계약해지 비용, 철수비용 등 추가 손실규모도 72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정부가 최대의 자원 외교 성과로 꼽거나 추진 중인 사업들이 곳곳에서 차질을 빗고 있는 이유는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체계적인 준비 없이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또 중앙아시아, 이라크, 러시아 등 자원 부국 이면서도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들에 대한 정보력과 전문인력 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저유가 시절에 우리 정부가 에너지 확보를 등한시 한 대가를 고유가가 되면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같은 가슴아픈 추억을 후손들이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자원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지만 철저한 분석과 준비 없이 성과에만 집착한다면 더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hj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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