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OK! 사이언스 코리아!] ⑪ 파동 에너지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2 19:57

수정 2014.11.05 11:29



지난 2004년 12월 26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휴일을 보내던 우리는 인도네시아로부터 전해진 갑작스러운 비보에 경악했다. 집채만한 해일이 바닷가 휴양지들을 덮치며 30만명의 실종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원인은 인도네시아 근처 심해에서 일어난 진도 9.0가량의 지진. 이 지진은 발생 2시간 만에 인도양 주변의 해안들은 물론 진원지로부터 수천㎞ 이상 떨어진 아프리카 해안에도 해일을 안겼다.

그런데 지진은 어떻게 이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그 먼 곳까지 전달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파동’이다. 파동은 물질 한 부분에 생긴 변화가 어떤 물질을 따라 차례로 퍼져 나가는 현상인데 우리가 듣는 소리도 공기중의 파동을 귀에서 받아들인 결과다. 파동의 과학을 따라가 보자.

■파동이 에너지를 전달한다.


지진이 일어났던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쪽 해안에선 1200㎞ 구간에 걸쳐 지층이 변형됐다. 어떤 곳에선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지층이 5m나 융기하기도 했다. 깊은 바다에서 일어난 이 같은 변화가 지각판을 들어 올리며 그 위에 있는 바닷물을 함께 들어올렸고 큰 에너지를 발생시켰다.

이후 이 거대한 에너지는 바닷물(매질)을 타고 파동이라는 형태로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바닷물이 에너지와 함께 밀려간 것은 아니다. 만약 바닷물이 이동했다면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있는 배들과 물고기들이 모두 아프리카 해안으로 밀려갔을 것이다. 이는 에너지를 전달만 하는 파동의 성질 때문이다. 바닷물은 상하로 움직이기만 했을 뿐 전혀 이동하지 않았고 실제 인도양 한가운데 있던 배들은 해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진원지에 가까이 있던 배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피해가 커졌을까.

해일은 지진이 발생하고 약 6000㎞ 떨어진 아프리카 동해안 소말리아에 10시간 만에 당도했다. 이때 에너지가 이동하며 나타난 파도의 크기는 곳곳에서 달랐는데 이는 수심의 차이 때문이다. 파도는 수심이 깊은 바다에선 상대적으로 파장(마루와 마루 또는 골과 골 사이의 거리)이 길고 진폭(높이)이 작다. 당시 인도네시아 쓰나미의 경우 수심이 4000m인 심해에선 이 파도가 213㎞의 파장과 1m 내외의 진폭을 가진 상태로 지나갔다. 하지만 파도는 수심이 얕은 해안에 가까워지면서 파장은 짧아지며 진폭이 커졌다. 어떤 곳에선 파도의 높이가 30m나 됐을 정도다. 이는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전환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에너지의 흐름을 살펴보면 수심이 깊은 바다에선 물 입자가 많아 적은 진폭으로도 에너지 전달이 가능했지만 얕은 바다에선 물 입자가 적으니 위치에너지라는 다른 에너지로 전환돼 높은 파도를 일으킨 것을 알 수 있다.

■귀를 울리는 파동도 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피해를 주는 파동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것이 없으면 매우 불편한 파동도 있다. 바로 소리다.

소리는 공기 입자를 통해 전달되는 파동이다. 우리가 말을 하면 성대가 떨리는 진동이 공기 입자의 파동으로 바뀌며 전달된다. 그리고 이 파동은 다시 우리 귀의 고막으로 전달돼 신경을 자극하고 뇌에서 소리로 감지된다.

우리의 전통 악기인 북도 공기 중에 파동을 만들어 소리를 전한다. 북을 두드리면 가죽이 떨리며 주변의 공기를 밀었다 당겼다 하는데 이 파동이 소리로 전해진다. 이 같은 소리는 음원에서 2, 3배 멀어지면 소리는 각각 4분의 1, 9분의 1로 줄어드는데 이는 소리가 들리는 면적이 4배, 9배로 커지기 때문이다.

소리의 이모저모는 공연장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연장의 벽을 살펴보면 울퉁불퉁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는 소리를 여러 방향으로 반사해 고르게 퍼지게 하기 위함이다.

객석을 살펴보면 좌석들이 어느 정도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는 뒷사람도 잘 보이게 함은 물론 소리도 잘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의자가 나란히 배치되면 소리는 사람에 막히거나 아래에 뭉쳐 잘 전달되지 못한다.

또 천장은 볼록하게 생긴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목하게 만들면 소리를 한군데로 모으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목 거울로 빛을 모으면 성화에 불이 붙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밖에도 공연장에선 커튼을 내려 잔향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하는 공연을 할 때는 커튼을 내려 잔향을 줄여 줘야 한다.

한편 소리의 반사를 잘 이용한 우리 전통 건축물도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에서 말을 하면 뜰 안에 소리가 잘 들린다. 회랑은 중요한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긴 집을 말하는데 이 회랑이 소리를 반사해 뜰 안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바닥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소리가 사방으로 고루 반사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연주되는 궁중 음악이나 각종 의식은 장엄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공동기획=한국과학창의재단

■사진설명=아름다운 클래식의 선율은 공기 입자의 파동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 때문에 공연장은 이 파동을 잘 제어해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