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렇습니다] 시베리아 가스노선과 한반도/이재훈 지식경제부 제2차관

이재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2 20:23

수정 2014.11.05 11:29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두어시간이 지나면 중국의 베이징을 지나 기수를 서북쪽으로 돌리는데 이후 3∼4시간 동안 끝없이 펼쳐져 있는 대륙을 지나게 된다.

이곳이 세계 육지 총면적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광활한 면적의 지구상 마지막 처녀지 시베리아다.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바이칼 호수를 품고 있으며 충만한 원시의 생명력으로 인해 러시아 작가들이 유토피아로 묘사하기도 했으며 러시아인들이 유럽에 대해 오염되지 않은 정신적 우월감을 과시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시베리아가 러시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발달한 유럽의 변방 국가였던 러시아는 선진 유럽을 모델로 삼고 발전해 왔으나 최근 유럽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 극동 아시아를 중심으로 모스크바-델리-베이징을 잇는 신 삼각구도를 형성하며 성장의 중심축을 개발 포화상태인 러시아 서부지역에서 극동·시베리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러시아 동부지역에서 도로, 병원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데 오는 2013년까지 280억달러를 투자하고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건설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동부지역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최대 가스회사로 러시아 천연가스의 독점적 수출권을 보유한 ‘가즈프롬’이 중심이 돼 동부지역의 4개 가스전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하나의 배관으로 연결하는 동부가스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착실히 수행될 경우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통합가스배관망(UGSS:Unified Gas Supply System)’이 구축된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합의한 러시아의 천연가스 도입사업은 이런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 및 통합가스망 구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우리나라가 추진했던 이르쿠츠크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도입사업이 ‘러시아 패트로리엄’이라는 러시아 민간기업에 의해 추진돼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추진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에 합의한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사업은 러시아 동부지역 개발이라는 러시아의 비전과 맞물려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이번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사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천연가스 배관을 건설해 PNG 방식으로 천연가스를 도입하기로 한 점이다.

우리나라가 전량 해외도입에 의존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는 가스를 액화한 후 선박으로 운송하기 때문에 많은 설비비용이 소요되고 세계적으로 천연가스의 약 93%가 인접 지역간 배관을 통해 거래되는 점을 고려하면 인접 국가에서 배관으로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방안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가스배관이 북한을 경유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키로 함에 따라 남북경협의 새로운 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대북사업이 일방적인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면 이번 한·러시아 천연가스 배관의 북한 통과는 북한 측도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실용적 남북 경제협력 모델로서 손색이 없다.

앞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협의, 배관건설의 기술적 문제, 러시아와의 가격 협상 등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에너지자원을, 러시아는 안정된 수출시장을, 북한은 배관 통과료를 확보하는 사업구조가 3국 모두에 득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차근차근 협의를 진행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각 가정에서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시베리아의 가스를 사용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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