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어렵게 목화씨를 붓두껍에 은닉해 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얼마든지 주머니(일설에는 목화씨 10여개를 주머니에 넣어 왔다고 함)나 다른 용기에 손쉽게 갖고 올 수 있을 텐데 왜 붓두껍에 숨겨 왔을까.
당시 원나라에선 목화가 반출금지 품목으로 지정돼 씨앗을 임의로 갖고 나갈 수 없었다. 선생은 한 알이라도 조국강산에 심기 위해 고민을 했을 게 분명하고 사신으로서 휴대하기가 쉬운 문필구인 붓 공간을 은닉처로 활용했으리라 생각된다.
밀수품을 숨길 수 있는 용기나 일정한 공간을 통상 비창(秘倉:비밀창고)이라고 부른다. 비창은 선박이나 차량 구조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특수제작하기도 한다.
컨테이너가 멈춰 서면 물류대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능히 예견되는 일. 문제는 컨테이너가 때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밀수비창이 된다는 것이다. 컨테이너의 경제성·신속성·안정성이라는 특성을 밀수꾼은 역이용하는 것이다.
한 컨테이너 속에 다양한 물품을 은닉해 오는 ‘백화점식 수법’이라든지 컨테이너 앞부분에는 신고한 물품을 배치하고 뒤에는 밀수품을 은닉, 정상 수입품이 커튼이 돼 밀수품을 가리는 ‘커튼치기수법’ 등이 주로 이용된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밀수 적발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정보활동 및 선진수사기법, 과학적인 검색장비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최근엔 컨테이너 X레이 검색기가 우리나라 컨테이너 반출입 주요 항만에 설치돼 있다.
이 밖에 밀수비창도 밀수품도 아닌 것이 꼭 은밀한 곳에 끼어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콘돔이다. 항문이나 자궁에 황금괴, 또는 마약류를 숨길 때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콘돔. 본래 기능에서 벗어난 외도라 할 만하다.
보스니아내전을 그린 영화 ‘세이비어’에서 주인공 ‘가이’는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려 했으나 젖병 꼭지가 보이지 않자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 우유병에 씌운 뒤 끝 부분을 칼 끝으로 구멍을 내고는 우는 아기 입에 물린다. 아기는 곧 울음을 그친다.
콘돔이 생명의 젖줄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콘돔이 황금이나 마약을 품고 은밀한 곳에 숨어 안절부절못하고 기회를 노리는 것보다 이처럼 신선하고 건강한 기능으로 쓰일 때면 그 외도에 박수를 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용득 부산세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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