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공연리뷰] 한국판 돈키호테의 고군분투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0.15 14:15

수정 2014.11.05 11:14

이건 ‘꿈’에 관한 이야기다. 거짓말을 보태고 과장을 좀 한다면 한국판 돈키호테라고도 할 수 있겠다.

11월 30일까지 대학로 아츠플레이 극장을 지키는 연극 ‘이웃집 발명가’를 꼼꼼히 뜯어보면 딱 그렇다.

남들에게서 ‘쓸모없는 짓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언젠가 자신의 발명품이 빛을 볼 거라 믿는 공동식은 돈키호테를, 그의 충직한 하인이자 유일한 친구인 블랙은 산초를 쏙 빼닮았다.

이들은 지저분하고 협소한 연구실에 틀어박혀 산다. 어떤 물건이든 집어넣기만 하면 사라지는 ‘물질 소멸기’, 하늘을 날게 해주는 ‘반중력 제어기’, 분자구조만 대면 뭐든지 만들어내는 ‘물질 합성기’ 등 신기하긴 해도 딱히 필요가 없어뵈는 것들이 그들의 작품이다.


그런 공두식에게 어느날 손님이 찾아온다. 척 봐도 비범해보이는 여성, 로즈밀러다. 그는 딱 한번 만난 공두식의 장래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못이룰 정도로 왕성한 오지랖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찾아오는 이 없고 관심 가져주는 이 없는 공동식은 이런 로즈밀러가 귀찮으면서도 반갑다.

로즈밀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라’며 동식의 작품을 몽땅 물질소멸기에 넣어버리고 그는 넝마를 뒤집어 쓴 채 중얼거린다.

‘난 뭐지?’

발명가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끝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이의 한탄이다. 자신이 볼품없는 늙은이라는 걸 깨닫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돈키호테처럼 그는 힘없이 쭈그려 앉는다.

한국식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과 외국 이름을 가진 여자 주인공,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힘든 배경은 작품이 주는 기발함을 한껏 살린다. 여기에 로즈밀러 역을 맡은 배우 김정은은 세명의 등장인물 중 가장 돋보인다. 9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터지는 웃음은 대부분 그의 것이며 속사포처럼 대사를 쏟아내면서도 실수 한 번 하는 일이 없다.

삐그덕대면서도 척척 죽이 맞는 두명의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내놓으며 작품의 장르를 SF에서 멜로로 확 바꾼다. ‘결국 사랑이야기야?’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기분좋은 맺음이다.

연극 ‘이웃집 발명가’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현대인에 조명을 비춘다고 설명한다.
각종 매체의 평도 한결같이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꼬집은 점이 눈에 띈다’다.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다.
두 명의 주인공은 만담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양의 대사를 쏟아내는데다 공두식과 외부의 단절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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