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전 세계 모든 인종이 살고 있는 뉴욕이라고 하지만 메츠의 팬들에게 노란색 피부를 가진 투수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기자가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바로 ‘선구자의 고난’이다.대부분의 사람은 생소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만약 그것이 사람에 대한 거부반응이라면 그 사람의 미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현미경 속의 관찰대상이 된다. 기존의 문화가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실수는 그냥 지나칠 수 있을지라도 ‘선구자’의 자리에 선 사람은 숨만 잘못 쉬더라도 질타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미국이 건국 230여년만에 첫 흑인 대통령을 뽑았다.지난 4일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던 순간 기자의 뇌리에는 노모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비록 새로운 비전과 변화를 내세우며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는 했지만 오바마가 현재 서 있는 위치는 희망과 기쁨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마치 카드로 만든 집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고 실업자들의 수는 십만 단위로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도 아닌 미국의 국민기업 제너럴 모터스(GM)가 파산 위기에 처해 있고 다우존스지수와 주택 가격은 계속 곤두박질하고 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존주택 판매가 전달에 비해 3.1%나 감소한 연율 기준 498만채에 그쳤다. 주택 가격도 한 해 전보다 무려 11.3%나 하락했다.
대형 은행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용돈을 탕진하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식처럼 정부에게 손을 벌려 구원을 요청하는 판국이다.제 아무리 용기와 패기로 가득 차 있는 하버드 법대 출신의 리더라고 하지만 오바마 당선인이 직면한 경제문제는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또 이러한 문제를 만든 자들이 (미 의회의 한 상원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깡통 차고 자가용 제트기를 타며 동냥하러 돌아다니는 얼간이들’이라고 하니 오바마가 앞으로 얼마나 속이 터질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는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공식적인 일은 물론 그의 사생활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그가 취임한 뒤 무언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으면 비난 여론은 거세질 것이다. 비록 미국 국민들이 정치적인 면에서 일반적으로 성숙해 있다고 하지만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의 목소리는 평소 때보다 몇 배 더 높을 것이다.
14년전 뉴욕의 야구장에서 노모가 받은 야유와 질타가 박찬호를 비롯한 그의 후배 아시안계 선수들의 보호막이 됐듯이 오바마는 그의 후배들을 위해 ‘선구자의 고난’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해 나갔다. 남북전쟁의 링컨에서부터 세계 제 2차대전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케네디부터 노련과 센스로 공산주의를 붕괴시킨 레이건까지 미국은 훌륭한 지도자의 복을 많이 받아왔다.
과연 오바마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금융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니, 기대가 된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jjung72@fnnews.com정지원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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