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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학계 ‘도전 방정식’은 계속된다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21 21:57

수정 2008.12.21 21:57



수학은 인류 역사와 함께 문명의 진보를 이끈 학문 중 하나다. 건축과 측량, 시간·날짜 계산에 이르기까지 고대 인류를 도운 수학은 근·현대로 넘어오며 더욱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수학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나라 수학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지만 수학자들의 학문적 역량은 최고 수준을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미래다. 수학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며 자라나는 학생들은 이공계, 특히 기초과학을 점점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박형주 교수는 21일 “수학을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며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수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 오는 2014년 국제수학자총회(ICM)를 유치해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국민에게 수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ICM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국내 수학계가 세계 일류로 도약할 기회가 온 만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학 없인 현대문명도 없다.

근대 수학은 ‘과학 혁명’을 이끈 핵심 키워드다. 17세기 뉴턴과 라이브니츠 등에 의해 발전된 ‘미분’ 개념은 만유인력 법칙 등을 표현하고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언어의 역할을 했다. 수학이 없었다면 이들 개념은 ‘과학’적으로 정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미분은 월마트 같은 대형 회사의 재고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군사 분야에서는 병참·보급의 최적설계 문제에까지 그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우주 탐사나 인공위성 발사 역시 미적분학의 발전이 없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사건들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고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발전 역시 수학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인터넷처럼 이질적이고 잡음(노이즈)이 낄 소지가 많은 네트워크들의 집합체에선 감히 신용카드 번호 같은 중요 정보를 전송할 수 없다. 하지만 수학의 ‘코딩이론’이 이를 가능케 했다. 노이즈를 탐지하고 교정하는 코딩이론은 이제 수학의 범위를 넘어서 많은 공학자도 연구하는 분야가 됐다.

박 교수는 “최근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파생상품 역시 처음엔 금융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라며 “위험요소의 제거 등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최전선에 역시 수학자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학 어디까지 왔나

우리나라 수학이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은 1981년 국제수학연맹(IMU)에 가입하면서부터다. 1919년에 결성돼 현재 68개의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는 IMU는 회원국을 5개 등급으로 나눠 투표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최저 등급인 1등급에서 시작해 1993년 2등급으로 상향됐다. 지난해 2개 등급을 뛰어올라 4등급으로 도약했다. 이는 IMU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당시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이것이 오히려 한국 수학의 힘을 더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됐다는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당시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검증을 받은 후 압도적 찬성으로 두 단계 등급 상향을 이룰 수 있었다”며 “일본의 한 심사자는 ‘한국은 최상위 등급인 5등급도 가능한 게 아닌가’라고 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논문 수에 있어서도 우리 수학의 성장은 눈부시다. 지난 2006년 현재 우리나라는 논문 수에서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IMU 5등급 국가가 서방선진8개국(G8)을 비롯해 이스라엘, 중국 등 10개국임을 감안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을 턱밑까지 추격했다고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제 우리 수학계는 IMU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췄다”며 “현재 강력하게 추진중인 ICM 유치까지 확정되고 나면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약의 기회를 잡아라

수학의 발전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밑바탕 없이는 산업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데 이 과학기술의 핵심에 수학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수학 발전을 앞당길 기회가 우리 앞에 찾아왔다. 지난 11월 대한수학회는 IMU에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ICM)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럼 한국 수학계가 왜 ICM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일까.

ICM은 전세계 기초과학계 최고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대회다.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수학의 올림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전세계 4000여명의 수학자들이 모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실력을 뽐낸다. ICM에서 초청 강연이나 기조 강연을 하는 것 역시 큰 영광이다. 지난 2006년 대회에선 우리 수학자 3명이 초청강연을 맡으며 한국 수학 실력을 과시했다. ICM 개막식에선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시상식도 열린다.
필즈상은 4년 만에 돌아오는데다 40세 미만이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벨상보다 받기가 훨씬 어려운 상으로 정평이 나있다.

박 교수는 “중국은 2002년 ICM 개최 이후 6년간 논문 수가 2배로 늘었고 연구비도 크게 증가했다”며 “이런 현상은 외국에 있는 중국 수학자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효과까지 거둬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ICM을 유치할 경우 이공계 학생들이나 젊은 수학자들에게 연구 동기를 북돋움은 물론 경제적인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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