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99년의 일이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인 ‘청년보’가 한국의 대중문화나 연예인에 열광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한류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면 한류는 올해로 꼭 10년을 맞은 셈이다. 지난 10년동안 한류는 막강파워를 자랑하며 아시아를 지배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반한류’ 정서에 밀려 다소 힘이 빠진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한류가 ‘한류(寒流)’로 변질돼 생명을 다했다는 비관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1999년 중국 청년보가 한류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 이전에도 중국에는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현상이 있었다. 그 시발점이 지난 1997년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다. 13억 중국인을 TV 앞으로 불러세운 ‘사랑이 뭐길래’는 그 이후에도 수차례 방영되면서 한류 드라마 붐에 불을 당겼다. HOT, 클론, NRG, 베이비복스, 안재욱, 장나라 등 대중가수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른바 ‘하한쭈(哈韓族)’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TV드라마와 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에 매료되고 열광하는 이런 현상은 대만, 홍콩 등 인근 중화권 국가로 번져나갔다.
또하나의 한류 진앙지인 일본은 중국에 비하면 다소 늦은 2003년부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한류 열풍에 불을 지핀 결정적 계기는 일본 아줌마들을 넉다운시킨 ‘욘사마’ 배용준의 ‘겨울연가’. 제작사인 KBS가 270억원에 판권을 판매한 ‘겨울연가’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만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소비를 이끌어내는 등 한류의 맹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밖에도 ‘올인’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 ‘풀하우스’ ‘대장금’ ‘주몽’ 등이 인기리에 방영됐고 이병헌, 송승헌, 원빈, 권상우, 이영애, 최지우, 송혜교 같은 한류스타를 양산했다.
한류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고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지난 2005∼2006년부터 한류는 ‘혐한류’ 또는 ‘반한류’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지난 2007년부터는 확연한 하향세를 보였다. 일례로 지난 2005년 중국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가 총 64편에 이르렀지만 2006년에는 36편으로, 또 2007년에는 30편으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 ‘겨울연가’에 이어 ‘대장금’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한류 열풍이 재점화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거대한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제2, 제3의 대박 상품(킬러 콘텐츠)이 출현하지 못하면서 한류는 현재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열살배기’ 한류는 이제 새로운 전략을 구축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10년의 단순한 반복이나 복제로는 더이상 세계시장의 높은 파고를 넘어설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우선 한류의 확산을 위해선 ‘깃발 꽂기’ 식의 한류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재고해야 한다.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나 한류를 앞세우는 공격적인 마케팅은 반한류·혐한류 의식에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노골적인 영토 확장과 국가주의적 시장 접근도 한류 지속화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에 불어닥친 혐한 감정은 한류의 확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민간에서 일기 시작한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방 통행식의 교류가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쌍방 교류의 관점에서 한류를 바라볼 때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한류라는 용어 자체를 아예 폐기하자는 주장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국·일본 편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의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문화적 전통이 전혀 다른 이란·터키·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에서 시청률 80%대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한류 전략을 새로 짜는데 교과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장금’을 황금시간대에 방영하고 있는 남미의 페루나 ‘대장금’이 국민드라마 대접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소문난 칠공주’ ‘별난 남자 별난 여자’ 등을 방영하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하얀 거탑’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을 수입한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보인 한류의 단초는 중국·일본 등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별 차별화 전략도 요구된다. 예를 들면 한류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대만·베트남 등의 국가에서는 소비자층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중장년층에 한정된 일본의 경우는 젊은층으로의 저변 확대를 위한 재충전과 유통 체계 재정비 등이 필요해 보인다.
장르의 확산도 조심스럽게 타진해봐야 할 시기다. TV드라마,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에 한정된 한류 콘텐츠를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모바일 콘텐츠 등으로 다양화하는 것을 넘어 뮤지컬, 국악, 오페라 등 고급문화로의 장르 확장도 한류의 심화를 위해선 필요한 전략이다. 대중문화에 비하면 파괴력이 약하고 전파 속도가 느리다는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이른바 고급문화 영역에 속하는 이들 분야는 국가 브랜드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시가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과 오페라 제작에 나섰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류가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킬러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이 요구된다.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TV드라마 한 편이 한류 붐을 견인했듯이 제3의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대박 상품의 출현만이 한류를 지속·확산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전문 인력의 양성과 창작력 제고를 위한 관련 인프라 확충, 글로벌 비즈니스 마케팅의 강화, 건전한 유통 환경 조성, 타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류는 무엇보다 한국이 문화 소비국에서 문화 생산국으로 변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면서 “한류처럼 ‘마음을 소통시키는 산업’을 통해 아시아인이, 그리고 전세계인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김진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산업진흥본부장은 “지금은 한류를 넘어 완성도 높은 문화콘텐츠를 통해 세계와 소통해야 할 때”라면서 “세계 5대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깊이와 폭이 담보된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내다파는 수출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대장금’에 관한 기사를 실은 이란 잡지. ‘대장금’은 문화적 전통이 전혀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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