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덕담을 아낌없이 날렸다. 주저리 주저리 주고받는 덕담 첫 언저리에 불꽃 튀듯 내리 꽂힌 건 ‘건강(健康)’ 두 자. 마음까지 보탰으니 경제 불황엔 건강보다 더 큰 밑천이 또 어디 있으랴. 건강이 밑천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경기 체온이 싸늘한 저편의 저잣거리를 들여다보라. 단돈 100원에 악다구니로 몸이 깨져라 눈물 적시며 병들어가는 것을.
미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가 경기 침체로 전이된 어제의 한 해 세상을 사자성어 호질기의(護疾忌醫)로 압축했더랬다. 액면 그대로 풀이하자면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이 정말 그랬을까. 실상은 ‘아니올시다’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TV드라마 ‘종합병원2’에서도 그 장면은 목도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얘기이지만 드라마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 앞에서 실색한 채 허둥대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모두가 애간장을 태웠다. 의료 과실에는 보상이라는 게 뒤따른다.
한데 경제 과실에는 보상조차 없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글로벌 경제 과실의 역병(疫病)은 태평양 파도를 타고 뚝방 가계를 향해 쓰나미처럼 엄습해오고 있다. 구력까지 붙은 골리앗 파고에 그 많던 경제 전문가도 촉수를 접고 줄행랑쳤다. 명쾌한 해법이 없으니 먼발치서 에둘러 변죽만 울렸을 뿐이고…. 모든 게 뜨악했다.
새파랗게 질린 2009년 괴물 경제가 수술대에 올랐다. 각종 지표가 급격히 떨어져 경고등을 켠 지 이미 오래다. 응급실에 실려왔을 땐 괴물은 ‘제로 금리’ 산소 알갱이가 든 인공호흡기를 꽂은 상태였다. 몇몇 의사들은 금리 인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후유증을 무척 우려했다. 고전경제학 논리에 맞는 얘기다.
또 다른 후유증도 고개를 치켜든다. ‘유동성위기’다. 일본이 1980년대 ‘거품경제’를 수술할 때 제로 금리 인공호흡기를 꽂은 적이 있는데 ‘엔캐리 트레이드’ 바이러스에 걸려 10년 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산소 알갱이가 기업과 가계라는 폐부로 공급되지 않고 금리 차익만 파먹는 세계 투기꾼들의 금융 재활용공장으로 새어 나가서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작금의 경제에 후유증을 둘러싸고 가타부타할 때가 아니다. 헐떡거리는 경제에 숨부터 불어넣는 게 급선무다. 제로 금리보다 약발은 떨어지지만 저금리 인공호흡기를 달고 공적자금까지 긴급 수혈해 일단 위기는 면했다. 유통기한이 4월까지인 미국산 통화스와프라는 비상 혈액도 준비돼 있다. 저금리 인공호흡기를 달고 수술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비상혈액은 애시당초 공수되지 않았다.
환부에 메스를 들이댄 외과팀은 혀를 끌끌 찼다. 자각 증세를 느끼지 못한 채 여태껏 병마만 키워와서다. 벌써부터 자동차, 반도체, 컴퓨터, 철강이라는 모든 장기마다 고질적인 성인병을 불러올 재고가 쌓여가고 있다. 급작스럽게 노출된 소비 한파에 자금경색이 악화된 게 화근이 됐다. 자칫 고용대란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지금 21세기형 뉴딜정책같은 비아그라 비책이 절실한 까닭이다. 그나마 11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극복 예방 주사를 맞은 게 천만다행이라니 역설적이다.
과잉투자로 비대해진 분양시장은 거의 빈사 상태다. 백약이 무효하다시피하다. 금융업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워 몸집을 너무 불린 탓이다. 소화불량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도처에 깔렸으니 금융시장에 역류성 PF 부실 감염이 우려된다.
수술 후엔 통증관리와 영양관리다. 환부를 도려낸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나도록 인재 양성과 실업자 교육이라는 줄기 세포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개발투자라는 재활 영양소를 끊임없이 투여해야 한다. 면역체제도 강화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글로벌 바이러스에 콜록거리지 않는 튼튼한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꺼져가는 환자에겐 ‘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중요하다. 두려움은 패닉을 불러서이다. 치료와 요양기간이 얼마 걸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강한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환자들은 의사를 통해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joosik@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