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리스크 테이킹] (3) 그룹 창업주 ‘불패신화’ 원동력은 창조적 마인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04 17:04

수정 2009.01.04 16:26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앞에서 올해 추구해야 할 좌표 설정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경기침체에서 회복 국면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물론 국내외 소비시장 동향 및 환율, 원자재가격 동향 등 경영계획을 잡기 위한 기본적 변수마저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은 이 같은 고난의 시기를 맞을 때마다 특유의 돌파력과 창조적 마인드로 쓰러지지 않고 우뚝 일어서는 불패 신화를 만들어 왔다. 특히 자동차, 정보기술(IT), 철강, 조선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위기상황 때마다 그룹 창업주들의 기업경영 철학과 위기극복 노하우를 되새기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도 치밀한 사전준비와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기업을 기사회생시킨 한국의 대표 창업주들의 경영철학은 다시 한 번 조명받고 있다.


■인재 중시 마인드가 글로벌기업 초석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은 중·일전쟁, 6·25 한국전쟁, 한국비료 사건 등 인생에 있어 세번의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좌절의 이유에 대해 철저하게 현실분석하고 전번의 실수를 교훈 삼아 불굴의 의지로 미래를 개척해갔다.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란 일생의 좌우명이 말해 주듯 행동주의적 삶과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오뚝이처럼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중 오늘의 삼성이 있는데 결정적 토대가 됐던 것이 1967년 한국비료사건이다.

당시 이 선대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해외여행을 하며 새 사업을 찾았고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해 당시로서는 불모지인 전자산업에 진출한다.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와 수출전망 등 사업 전반에서 당시 한국 경제 여건에 꼭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하면서 미래의 반도체산업 전망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가장 힘든 시절에 가장 무모한듯 보이는 투자를 감행했지만 치밀한 준비 끝에 후대에 남길 역작을 만든 것이다.

1979년 미국의 뱁슨대학교가 개도국 한국의 이병철 회장에게 ‘최고경영자상’을 수여할 때 이 대학 소렌슨 총장은 “이병철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킨 것은 항상 그 사업의 시장성이 가장 낮은 수준에 있을 때였고 극히 곤란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였다”고 밝혔다.

이 선대 회장의 인재 중시 철학도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온 글로벌 삼성의 초석이 됐다.

이병철 회장은 평소에도 “난 도장을 찍어 본 적이 없다. 도장을 가장 잘 찍는 사람을 뽑는 일을 한다. 내 인생의 80%를 사람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집단토론시험의 주제를 직접 정해주는 등 본인이 사원들의 입사시험문제를 내기도 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적성검사를 도입할 때는 직접 집안의 보일러공이나 청소 아줌마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게 하고 일리가 있는지 따져본 뒤 도입할 정도였다.

■실천·모험만이 성공 좌우

지난 2005년 1월 현대중공업에 발주한 9번째 선박의 명명식 참석차 울산을 방문한 해운업계 거물인 리바노스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정신력과 모험심만 믿고 26만t급 유조선에 대한 발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며 과거를 회고했다.

조선업 진출을 선언한 정 회장은 당시 선박 수주를 위해 스위스 몽블랑의 별장에 묵고 있던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 26만t급 유조선 2척에 대한 수주 계약을 따냈다. 당시 정 회장은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과 5만분의 1 지도 한 장,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26만t급 유조선 도면을 들고 선주들을 찾아다니던 상황에서 이 같은 계약은 파격 그 자체였다. 정 회장은 나중에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보고 계약을 하는 파격을 보인 리바노스 회장에 대해 “나보다 더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 같은 신화는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이 올해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미래 경영전략에 큰 화두를 던진다.

조선업 신화뿐 아니라 세계적 자동차 그룹으로 성정하는 과정, 대북사업을 위해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과감한 돌파력 등은 모든 기업인들에게 경영의 좌표를 일깨워준다.

“이봐, 해봤어?” 정주영 명예회장이 즐겨 사용하던 말이다. 그는 직원들이 힘든 일을 주저하거나 포기하려 할 때 이처럼 질타했다. 시작도 안 해보고 두 손을 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같은 그의 열정과 돌파정신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재도약을 위해 되새겨야 할 경영자 정신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풀뿌리 정신

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맨주먹 하나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도전정신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귀감이 되고 있다.

고 최종건 회장은 1953년 4월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경기 수원시 평동 벌판에서 직기 20대의 선경직물을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SK그룹을 오늘날 매출 80조원의 재계 3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초석을 놓았다.

그는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1944년 18세 때 일본인이 경영하던 선경직물 경기 수원공장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최 회장은 피란길에서 고향 수원으로 돌아와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선경직물 공장을 목도한 1953년 3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를 만든다. 정부 귀속재산이던 선경직물을 인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자금을 마련한 최 회장은 1953년 10월 1일 회사를 정식 인수하고 선경직물 창립을 선포했다. 바로 SK그룹의 ‘태동’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고 최 회장의 끈기와 야망은 훗날 SK가 유공(현 SK에너지)을 인수해 종합 에너지·화학사업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도전과 불굴의 의지로 철강제국 건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회사의 태동 때부터 ‘위기 속 성공신화’라는 역사를 일궈 왔다.

지난 1968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경북 포항 영일만 허허벌판에 자금도 없는 상황에서 제철소 건립에 착수한 당시 박태준 사장은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 동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을 각오를 하자”는 비장한 각오로 철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박 명예회장의 도전과 불굴의 기업정신은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82년부터 시작된 전 세계 철강업계 불황 때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을 통해 최고의 빛을 발했다.

당시 철강 소비 증가율이 3.4%로 떨어지고 가격은 고점 대비 33%나 하락해 미국 철강회사들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누적 적자가 116억달러에 달했다. 신일본제철 등 일본 고로 5사도 두차례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시기에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건설(85년 3월 착공)을 과감히 추진해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제철소가 첫 가동된 1973년 매출액 416억원, 영업이익 83억원의 작은 회사에서 2007년 매출액 22조2000억원, 영업이익 4조3083억원이라는 경영실적으로 세계 3위의 철강회사로 거듭났다.

■집념의 정신이 세계화 성공 관건

46세에 택시 두대로 창업해 육상운송에서 항공운송에 이르기까지 국내 운송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그의 무엇이든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운송업의 불모지에 선진운송의 불씨를 일으켰다.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로 뻗어가는 기술로 인정받기까지 그 멀고 험했던 길을 묵묵히 걸어 온 박인천 회장. 금호아시아나는 육상운송업이라는 외길을 걸어 온 창업 회장의 집념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항공사업이라는 커다란 꽃을 피웠다.

박인천 회장은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던 중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전쟁은 광주여객이 운행하던 전남의 교통망을 마비상태로 만들었고 모든 여객업체들의 차량들도 대부분 파괴되거나 징발, 분실됐다. 경쟁사들이 차량 운행을 재개할 엄두도 내지 못할 당시 박인천 회장은 이 시기에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자’는 박 회장의 의지가 모든 직원들에게 파급됐다. 직원들은 산간벽지까지 가서 파손된 차량을 끌어왔고 그 차체와 부속들을 수리하고 조합해서 다시 차를 만들었다. 박 회장은 직접 타이어와 휘발유를 구하러 뛰어나녔다. 전쟁 직후 박 회장은 아예 신형 일제 디젤엔진을 대량 구입했다.

전쟁 후 혼란이 점차 안정되자 유기차량과 군수부품으로 조립된 차량들은 모두 운행정지 되었으나 적법한 엔진을 장착한 광주여객만이 운행을 할 수 있었고 이후 전남 제일의 운수업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재 금호아시아나의 ‘집념의 세계인’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끈기(노력), 지혜(실력), 도전(용기)으로 이루어진 집념의 정신은 타 기업들의 ‘정도경영 바이블’이 되고 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