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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와 황금날개] <61> 텃밭에서 야채따기 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09 18:35

수정 2009.01.09 18:51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많이 아픈가 보네, 보스?”

노이만이 결재 판을 내밀었다.

“정말 꼼짝도 못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는 무슨. 아픈 사람이 고생이지. DS지오텍에 대해서는 아직 더 조사를 해봐야겠어. 그쪽 사람들이 슬그머니 발을 빼는 눈치야. 몰리브덴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

“지난 연말 이후 국제 자원가격 급락으로 불안할 겁니다. 그 사람들 꼼수를 쓰고 있는지 모르니 우리도 한 발 뺀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그게 아니라. DS지오텍 광산에서 일했던 어떤 광부가 금맥을 봤다는 얘기가 은밀하게 나돌아. 몇몇 업체에서 DS지오텍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게 그래서래.”

“금맥이요?”

“글쎄. 황당하거나 꼼수이거나지. 좀 더 알아보고 보고할게.”

“개무시해야 합니다.

강일남 한테 한 번 물어보시고, DS지오텍 관련 자료는 윤하 회계사님한테 넘길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구요.”

영철은 노이만에게 커피를 따라 마시라고 권하고 증권저축 통장이 든 비닐 케이스를 꺼냈다.

“일억입니다. 이걸로 선물에 투자해 봤으면 합니다. 노이만님 이름으로 하든가 강일남님 이름으로 하든가 계좌를 새로 개설해서 해보십시오.”

“카페인이 필요한 얘기군. 날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어째 찜찜하네.”

노이만이 영철의 잔에 커피를 따르고 자기 잔에도 더 채웠다.

“일억으로 돈을 따는 것은 어렵지 않아. 따고 난 뒤 사고를 칠까 봐 무서운 것이지.”

“자신 없습니까. 사업에 필요한 종자돈으로 우선 30억쯤은 만들어야 하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사양할게”

“노이만님. 김순정씨와 오프라님한테 거의 몰빵을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혹 잃는다면 이것으로라도 만회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노이만님이 처음 하는 베팅이기 때문에 해보자는 겁니다. 도박병 도지면 그땐 내가 통제하겠습니다.”

필립의 방을 나온 노이만은 만감이 교차했다. 카지노 노숙자였던 자신에게 이렇게 큰돈을 맡겨준 것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웠다. 원하기만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되든 30분이나 1시간, 혹은 3∼4시간 맡아두는 셈으로 카지노로 달려갈 수도 있었다.

은행 입구에서 노이만은 자신의 옷차림을 점검했다. 어서 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비원이 인사를 건넸다. 짝퉁 아르마니를 입었지만 어느 눈이 그것을 알아보겠는가. 노이만은 우아하게 경비원의 인사를 받으며 대기 번호표를 뽑았다.

그런데 대기석 한 가운데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자 가슴 저 밑에서부터 다시 저벅저벅 도둑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그것이 기차바퀴처럼 덜커덕 덜커덕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가능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달려오게 한 것은 바로 이 설렘이었다. 1억 원을 어떻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니야! 노이만은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일억이 아니라 천억이야!

이래서야 어디 먼 길을 가겠는가. 문득 자신이 시험에 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등 뒤에 낯익은 기척이 있었다.
키가 큰 강일남이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