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태어나 서울 동성고와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한 박 고검장은 서울지검 북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수원지검 강력부장, 대검 강력과장, 서울지검 강력부장 등 ‘강력통’의 길을 거쳐 대검 공안기획관과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맡았었다. 당시 그는 ‘돌쇠’로 불렸다. 매사에 적극적이어서 후배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2002년 서울지검 2차장 자리에 있을 때는 SK분식회계 사건을 해결했다. 그 시절 각계에서는 ‘국가부도가 우려된다’며 강력 반발했고 김각영 검찰총장도 전국 검사장들 대다수가 반대한다며 수사 착수를 하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을 맡고 있던 서울지검 형사9부 이인규 부장(현 대검 기획조정부장, 19일자 대검 중수부장 임명)을 비롯한 수사팀의 강행 주장을 받아들여 수사를 밀어붙였다.
결국 수사팀은 회장실에서 분식회계와 관련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 그룹 최고 경영진의 사법 처리했다. 이 사건은 대선자금 수사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장 때인 2006년에는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ㆍ횡령 혐의를 찾아내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특수수사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박 고검장은 검찰 60주년을 기념해 선정되 20대 사건에 ‘오대양 집단변사’ 등 자신의 담당하거나 지휘한 사건 3건이 선정된 것을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1987년 경기도 용인시 (주)오대양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이 회사 대표 박순자씨와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것을 일컫는다. 당시 수원지검 평검사였던 박 고검장은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었다.
박 고검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정신을 거론하며 검찰조직의 결속을 강조했다.
또 전 일본검사총장이던 유시나가유스케의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 속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 없다’는 말을 예로 들며 검찰권의 절제를 주문했다. 아울러 아집과 편견, 무모와 오만하지 않도록 엄정공평.불편부당한 검찰 정신을 당부했다.
박 고검장은 “공직을 갑자기 떠나려니 망설임도 있었고 번민도 없지 않았다”면서 “훌훌 털고 감사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떠난다”며 여운을 남겼다.
/jjw@fnnews.com정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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